안락사회 - 나우주 소설집
나우주 지음 / 북티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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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31.

인문책시렁 310


《안락사회》

 나우주

 북티크

 2022.8.31.



  《안락사회》(나우주, 북티크, 2022)는 책이름 그대로 ‘아늑터’를 그린다고 할 만하고, ‘아늑한 척하는 터’를 그린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집’이라는 이름일 텐데, 지붕만 겨우 있다고 볼 잠터일 수 있고, 포근포근 즐거운 터전일 수 있고, 짐스럽게 짊어지는 터일 수 있습니다.


  시골이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는 시끄럽고 밤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이더라도 잿집(아파트)에 깃들면 바람소리나 물결소리나 풀소리나 새소리하고 등집니다. 서울이라면 어느 집이어도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를 못 느낄 만하지만, 마당을 거느리는 조촐한 살림을 꾸린다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푸르게 일렁이는 숨빛을 날마다 이럭저럭 누릴 만합니다.


  아늑하다고 여기기에 잿집에 깃드는가요? 참말로 잿집은 아늑할 수 있을까요? 흙을 등진 잿집은 뭐가 아늑할까요? 풀꽃나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으르렁거리는 잿더미에는 살림빛이란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잿집을 늘려야 한다고 여기고, 서울은 자꾸 부피를 키우면서 들숲과 멧골을 밀어낼 뿐입니다. 잿고을과 잿고을 사이를 빠르게 이으려고 시골하고 들숲하고 멧골은 또 잡아먹혀요.


  이제는 어떤 하루가 아늑한 살림인지를 찾아나서야 할 노릇입니다. 여름에 왜 시원해야 할까요? 겨울에 왜 따뜻해야 할까요? 멀쩡한 다리로 걷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어찌 될까요? 멀쩡한 손으로 나르지 않는다면 우리 머리는 어떻게 구를까요?


  겉모습은 으레 허울입니다. 옷차림으로는 마음을 못 밝힙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서 어우러지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느긋하면서 아늑합니다. 아늑터는 남이 아닌 내가 일구는 자리입니다. 아늑집은 엄마아빠가 잘 챙겨야 하는 데가 아닌,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한사랑으로 만나는 마음으로 빛나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같이 눈뜰 수 있기를 바라요. 사람은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고 펴려는 마음으로 이 별에 태어났습니다. 사람이라면 사랑할 일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면서, 스스로 살림하면서, 스스로 하루를 걸어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엄마는 아버지를 피해 내 방으로 도망쳐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에게 반항이란 걸 한답시고 생애 처음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14쪽)


동네 사람들은 ‘시치미’라는 가면을, 아버지는 ‘망각’이란 가면을, 어쩌면 엄마도 ‘태연함’이란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몰랐다. (33쪽)


사랑은 오직 처한 환경과 상황 때문에 발생한다. (110쪽)


경기도권의 이름도 없는 4년제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도 봉천동만큼이나 여자애들을 김새게 하는 모양이었다. (156쪽)


인철이네 집을 다녀온 후로 나에겐 목적의식 같은 게 생겼다. 동경이 아니라 가져야겠다는, 어떻게든 말이었다. (195쪽)


남자는 아들의 무심한 대답이 아쉬웠지만 어쩌자는 생각도 없었다. 사실 아들의 방에 들어온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239쪽)


+


일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일을 늦추지 않았다

→ 일을 빨리 했다

9


진작부터 ‘홈워커’가 활성화되어 있다며 나를 필두로 지원자를 더 받기도 했다

→ 진작부터 ‘집일꾼’이 자리잡았다며 나를 앞세워 사람을 더 받기도 했다

→ 진작부터 ‘집지기’가 퍼졌다며 나를 비롯해 일꾼을 더 받기도 했다

19쪽


하나같이 고층이었고 하나같이 인조적이었다

→ 하나같이 높고 하나같이 거짓스럽다

→ 하나같이 높다랗고 하나같이 꾸몄다

43쪽


엄밀히 말해서 고졸이 아니라

→ 깐깐히 말해서 푸른줄 아니라

→ 그러니까 푸른마침이 아니라

57


학력을 위조한 것은 내가 아니라 아빠였다

→ 배움줄은 내가 아니라 아빠가 속였다

→ 배움끈은 내가 아니라 아빠가 거짓이었다

57


이 정도는 벌어 주는 게 적정선 아닐까

→ 이쯤은 벌어 주어야 알맞지 않을까

→ 이만큼은 벌어 주어야 되지 않을까

→ 이렇게는 벌어 주어야 좋지 않을까

61


그런데 프리터가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린 삶에 길들여졌다

→ 그런데 나래글꾼이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리게 산다

→ 그런데 혼일꾼이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리게 살아간다

75쪽


꿈마저 잃은 루저로 살라는 거니

→ 꿈마저 잃은 넋뜨기로 살라니

→ 꿈마저 잃은 바보로 살란 말이니

76


엄마에게로 돌진하는 아줌마

→ 엄마한테 달려드는 아줌마

77


무수한 너를 증오하며 오직 잊기 위해 글을 썼다

→ 숱한 너를 미워하며 오직 잊으려고 글을 쓴다

133


고스톱 치다가 바닥에 먹을 게 없잖냐

→ 꽃그림 치다가 바닥에 먹이가 없잖냐

→ 꽃짝 치다가 바닥에 밥이 없잖냐

153


‘인서울에 실패하면 인생 조진다’를 비로소 실감했다

→ ‘서울길에 미끄러지면 삶 조진다’를 비로소 느꼈다

→ ‘서울바라기 안되면 살림 조진다’를 비로소 알았다

→ ‘서울로 못 가면 한삶 조진다’가 비로소 와닿았다

156


꼴에 싸구려 모텔 싫대서

→ 꼴에 싸구려 마실채 싫대서

234


침대를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자

→ 자리를 받고 돌봄옷으로 갈아입자

290


사위가 나무들로 빼곡해 왔다

→ 둘레가 나무로 빼곡하다

→ 온통 나무이다

→ 나무숲이다

→ 숲이다

3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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