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6
김만중 지음, 설성경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27.

인문책시렁 242


《구운몽》

 김만중

 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2.3.첫/2006.1.25.고침



  《구운몽》(김만중/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을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읽힐 만하려나 싶어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1687년에 나온 이 꾸러미를 제대로 읽기가 어렵겠구나 싶더군요. 오늘 우리가 한글판으로 만나는 《구운몽》은 훈민정음판을 요샛말로 다듬은 판일까요, 한문판을 옮긴 판일까요? ‘요샛말’이란 또 무엇일까요? 지난날 나리(양반)가 익히 쓰던 한문 말씨를 옛글에도 그대로 옮겨야 하나요? 아니면, 지난날 한문을 모르고 ‘우리말’만 쓰던 수수한 사람들 말씨를 되살려서 옮겨야 하나요?


  어느 판으로 되읽을까 하고 한참 헤아리다가 ‘설성경 옮김판’으로 골랐는데, 썩 우리말스럽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떠나 말결부터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못 읽히겠구나 싶어요.


  이야기책 《구운몽》에 흐르는 밑뜻하고, 어제오늘을 가로지르는 순이살림(여성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아 살림을 일군 수수한 어머니는 ‘어려운 말’도 ‘잘난 말’도 ‘먹물스러운 말(학문용어)’도 안 썼습니다. 수수한 어머니 곁에서 아이를 나란히 사랑으로 돌본 수수한 아버지도 ‘딱딱한 말’이나 ‘양반님 한문을 흉내낸 말’을 안 썼어요. ‘것’을 아무 데나 쓰지 않는 입말이요, ‘-의’도 함부로 끼워넣지 않는 입말입니다.


  한문을 한글로 옮기든, 이웃말을 한글로 옮기든,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많이 배웠다는 먹물’이되, ‘많이 배웠다’기보다 ‘책만 많이 읽은’ 사람들입니다. 집살림을 오래오래 돌보았거나 아이를 곁에서 보살핀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옮기기(번역)를 하지는 않더군요.


  꿈은 그저 꿈일 뿐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꿈꾸는 대로 이루고 누리고 마주합니다. 헛꿈을 그리면 헛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하지요. 사랑꿈을 그리면 사랑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해요. 《구운몽》은 바로 이러한 ‘꿈’을 스스로 마음에 품고 그리고 풀어내어 누리는 삶을 차근차근 보여주었다고 느낍니다. “아홉구름꿈”은 덧없기만 하지 않습니다. 덧없는 길을 그려서 누려 보았기에, 이 삶에서 그릴 꿈을 제대로 바라볼 만해요. 바람을 타는 구름이란 무엇인지, 구름이 꽃바람으로 흐르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 땅을 두 발로 구르면서 나아가는 길이란 무엇인지, 마음을 다스리는 생각씨앗 한 톨로 심고 가꾸고 키우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그러나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주인의 강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석교에서 선녀와 수작한 것은 길을 비켜 달라고 한 것뿐이고, 제 방에서 망상을 하기는 했으나 즉시 뉘우치고 자책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죄는 없습니다.” (15쪽)


“세상에 귀신을 미워하는 자는 우매하고 겁 많은 사람이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하면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귀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못난 사람이고, 사람을 피하는 귀신이 있다면 신령하지 못한 귀신일 것이오.” (84쪽)


“신하가 충성을 다함은 직품이 높아지는 것과 상관이 없고, 싸움에 이기고 패함은 군사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으니, 신은 그저 한 무리의 군사를 얻어 조정의 위엄에 의지하여 나아가 도적과 죽을 각오로 힘써 싸워 천은(天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98쪽)


“부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의 심중을 굽어살피시어 세세생생 다시 여자로 태어나지 않도록 전생의 죄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을 주셔서 좋은 땅에 환생하여 기쁨을 길이 누리게 하소서.”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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