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밤하늘 2023.10.8.해.
팔월이 저물 즈음 맨 먼저 구름결을 읽고서 훌쩍 바람을 타는 제비가 있어. 구월이 무르익어 문득 구름빛을 느끼고서 가볍게 바람을 타는 제비가 있어. 시월로 들어서고서 드디어 구름길을 헤아리고서 힘껏 바람이 되는 제비가 있어. 십일월에서야 꽁무니로 구름을 따라가는 제비가 있을 테지. 이 모두 제비이고, 날갯짓이고, 새길이야. 언제 어떻게 날아도 제비야. 어느 나라 어느 고장에 어떻게 둥지를 틀어도 제비야. 너희는 나라를 가른 채 살지만, 제비는 제비로서 살아간단다. 나무한테 나라가 있니? 민들레한테 종교가 있니? 달팽이한테 학교가 있니? 꽃한테 대통령이 있니? 곰한테 아파트나 자동차가 있니? 냇물과 바다와 하늘에도 나라가 없고, 장관이고 교장·교감·교사가 없어. 그러나 모두한테는 마음이 있고, 숨결이 있고, 빛이 있어. 마음·숨결·빛을 가꾸면서 사람 곁이나 사이에 깃드는 동안 사랑을 느끼고 배우고 나누지. 낮하늘에 무엇이 있니? 밤하늘에 무엇이 있지? 햇빛이 밝아 별빛을 녹인다고 해서 별이 없을까? 해가 진 밤에 별빛만 초롱하기에 해가 없을까? 가을이 깊어 감나무에 잎이 다 져도 감나무가 없을까? 개구리에 뱀에 두꺼비가 겨울잠을 자느라 안 보이기에 없을까? 너희가 오늘 서로 만나기까지 모르는 사이였기에, 서로 ‘없는 사람’이었을까? 네가 없다고 여기는 마음이니 눈빛을 못 틔운단다. 마음을 눈으로 못 보기에 마음이 없을 수 없고, 쿨쿨 잠들었기에 넋이 없을 수 없어. 감추거나 가둔들 사라지지 않아. 오직 사랑이라는 숨결로 포근히 노래할 때라야만 모두 녹이고 풀어서 빛줄기로 바꾸어 낸단다. 물 한 모금도 바람 한 모금도 저마다 다른 빛줄기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