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노래칸 : 노래를 목청껏 외치면서 짜증을 훅훅 털어낸다고 하는 곳이 많다. 나는 이곳을 1990년 중학교 3학년 무렵에 처음 가 보았다. 동무가 같이 가 보자고 한 해 가까이 보챈 끝에 들어갔는데, 엄청난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고등학교 적에 몇 걸음을 더 해야 했지만 노래는 안 부르고 귀를 막으면서 ‘언제 이 녀석들이 다 놀고서 나가자고 하려나’ 하고 기다리기만 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1994년부터는 좋든 싫든 노래 몇 가락은 뽑을 줄 알아야 했기에, 노래칸에 있는 노래 가운데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찾아내어 외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막상 애써 부르고 싶은 노래가 노래칸에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두 아이를 낳으면서 노래칸에 갈 일은 없다시피 하고, 시골로 터전을 옮기면서 조용히 바람노래하고 풀노래하고 새노래를 듣는다. 밤에는 별노래를 듣는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다른 노래빛이다.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줄 알면 굳이 꽉 막히고 캄캄한 곳에 들어박혀서 소리를 지르지 않으리라. 노래는 놀이하는 사람한테서 스스럼없이 웃음눈물로 흘러나온다. 새가 어떻게 노래하는가? 벌레가 어떻게 노래하지? 바람하고 별은 어떻게 노래하나? 오늘날에는 ‘노래’가 아닌 ‘소리장사꾼’만 있다고 느낀다. 귀를 열고서 노래를 들어야 스스로 귀를 틔울 텐데. 2022.10.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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