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이어폰 : 인천·서울에서 살며 칙폭길(전철길)을 다니거나 거님길을 지날 적에 이따금 ‘라디오 소리를 크게 트는 아재나 할배’를 스치곤 했으나, 이제 서울에서는 이런 얼뜬 사람은 드물다. 다만 ‘거룩말씀·거룩노래’라면서 이녁 믿음(종교)을 퍼뜨리려고 떠드는 사람은 곧잘 있다. 전남 고흥에서 살며 시골버스에서든 버스나루에서든 길에서든, 손전화로 누리놀이(인터넷게임)를 하거나 그림(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시끄럽게 소리를 트는 아재나 할배나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를 자주 스친다. 이들은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 헤아리지도 않고, 이들을 나무라거나 타이르거나 따지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얼근한 얼굴로 누리놀이를 하는 아재한테 “소리 좀 끄시오” 하고 나무랄 사람이 없을 듯싶기도 하다. 우루루 무리지어 누리놀이를 하는 푸름이를 보며 “이어폰을 써야 하지 않니?” 하고 타이를 사람도 없을 듯싶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배움터에서 손전화를 내놓고서 배운다고 하지만, 정작 손전화를 받을 적에 “길이나 버스나 열린터(공공시설)에서는 소리를 틀지 않고, 귀에 꽂고서 들어야 합니다.” 하고 듣거나 배운 적이 아예 없을 수 있겠다고 느낀다. 길잡이(교사)도 어버이(부모)도 이녁 아이들이 길이나 버스에서 어떤 몸짓인지 하나도 모를 만하리라.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가 걸어다니는 모든 길에 “담배꽁초 버리지 마시오. 담배 함부로 피우지 마시오.” 하는 알림판을 끝없이 세워야겠는가? “사람을 때리지 마시오. 길고양이를 걷어차지 마시오.” 하는 알림판을 온갖 곳에 잔뜩 세워야겠는가? 요새 배움터는 들머리(교문 주변)에 ‘학교폭력 예방·금지’를 알리는 글씨를 크게 붙이는데, 이런 글씨를 붙여야 바보짓(폭력)을 멈출 수 있을까? 알림판을 안 세우더라도, 사람으로서 됨됨이를 다스릴 노릇이다. 굳이 알림말을 들려주지 않더라도, 어릴 적부터 집이며 마을에서 마음결을 사랑으로 포근히 돌볼 노릇이다.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매무새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추스르지 못 할 뿐 아니라, ‘어른 아닌 꼰대’인 아재하고 할배가 길과 버스에서 허튼짓을 멈추지 못 한다면, 시골은 더더욱 곯다가 텅텅 비어 사라질 만하겠지. 어버이여!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손전화만 사주는가? 왜 소릿줄(이어폰)을 안 사주는가? 어버이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길과 버스에서 소릿줄을 귀에 꽂고서 둘레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안 퍼뜨려야 하는 가벼운 매무새를 가르치지 못 한다면, 그대는 어버이가 맞는가? 2023.10.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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