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국군의 날 : 열세 살 작은아이가 문득 “아버지, 왜 ‘국군의 날’은 있고, ‘숲의 날’은 없어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숲이지 않아요? 숲을 모르고 전쟁무기만 내세우면 어떡해요?” 하고 묻는다. 여러모로 알아보니 2012년에 유엔에서 3월 21일을 ‘International Day of Forests’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숲의 날’이나 ‘세계 산림의 날’쯤으로 옮기는 듯한데,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면 ‘숲날’이나 ‘온숲날’이나 ‘온누리 숲날’이라 해야겠지. 그러면 ‘숲날·온숲날’에는 무엇을 할 만할까? 사람들이 나무를 심을 만한 빈터가 이 나라 어디에 있을까? 이미 나무가 자라는 옆에 어린나무를 박는가? 부릉부릉 매캐한 길을 걷어내고서 나무를 심어 숲으로 돌리는가? ‘공공기관·아파트·군대·공장·관광지·긴다리·터널·케이블카’를 걷어내고서 나무를 심을 짬을 마련하는가?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마당에 심어 돌보는 나무”를 누리지 않는다면, ‘숲날·온숲날’ 같은 이름을 2012년부터 쓴다고 하더라도 허울로 그친다. 더구나 ‘숲’이라는 우리말조차 못 쓰면서 ‘산림·삼림’이라 한다든지, ‘풀·푸르다’라는 우리말마저 안 쓰면서 ‘에코·그린·청정’이라 한다면, 겉치레로 그치게 마련이다. ‘숲날·온숲날’은 목돈을 들여서 자랑하거나 잔치를 벌이는 날이 아니다. 한글날·스승날·어버이날 같은 때도 돈을 들여서 뭘 보여주거나 치켜세워야 하는 날이 아니다. 한 해 내내 스스로 푸르게 마음을 추스르고 가꾸고 일구면서 사랑을 품을 적에 비로소 숲빛에 풀빛으로 사람다운 넋을 돌아보리라. 2023.10.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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