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픈 마을 (2023.9.15.)

― 인천 〈오월의 제이크〉



  예전에 인천 시외버스나루가 있던 곳은 여러 마을이 맞닿았습니다. 버스나루는 용현1동이라면, 바로 옆은 용현5동이고, 기찻길 옆 사이로 숭의1동에, 길 건너 노란집이 줄지은 데는 숭의2동에, 연탄공장하고 제일제당이 깃들고 제가 살던 집이 있던 데는 신흥동3가였어요. 여기에서 나루 쪽으로 조금 가면 연안동이고, 옥련동하고 학익1동은 걸어서 가깝고, 신광초등학교 앞으로는 선화동인데, 신흥초등학교 쪽으로 건너가면 신흥동2가요, 안쪽은 신흥동1가이고, 인천여상 쪽으로 뻗으면 신생동에 사동으로 잇고, 곧이어 답동과 답동성당이고, 율목동하고 신포동이 큰길로 만나고, 싸리재를 끼고서 유동하고 인현동1가에 인현동2가가 맞물리고, 신포시장 쪽은 내동입니다. 배다리는 경동하고 금곡동하고 창영동하고 송림1동하고 맞닿습니다. 박문여고 쪽으로 가면 송림2동에 송림3동으로 잇다가 송림4동과 송림6동에 도화2동이고, 야구장 쪽으로 금곡동에 창영동에 숭의1동에 송림3동에 도원동이 맞물리고, 이윽고 수봉산 쪽으로 도화2동이고, 이윽고 널따란 주안동으로 이어요.


  이제는 옛골목이 거의 송두리째 헐렸으나, 아직 숭의1동 오랜 동무네 감나무집은 고스란합니다. 이 곁에 마을책집 〈오월의 제이크〉가 깃들었어요. 우리나라 어느 고장이 왁자지껄 허물고 부수고 올려세우지 않았겠느냐만, 인천 중·동·남구가 맞물린 골목마을은 끝없이 물결치는 아픈 마을이에요.


  책집에 깃들어 《제이크 하늘을 날다》라는 그림책을 떠올립니다. 작은책집은 작게 둥지를 틀기에 작게 빛납니다. 큰책집은 크게 터를 잡으며 크게 반짝이겠지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게 책을 만나고 읽고 새기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천천히 즐겁게, 나무가 자라듯, 해마다 풀꽃이 돋아나듯 하루를 노래하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곳에 담벼락(카르텔)이 섭니다만, 어떤 담도 사랑을 가두지 못 해요. 사랑을 담는다면 담벼락이 아닌 보금자리일 테지요. 눈먼 담벼락을 스스럼없이 치울 줄 알면서, ‘담벼락 글밭(카르텔 문단)’을 살랑살랑 거스른다면, 아니, “하늘을 나는 제이크”처럼 홀가분히 바람을 마시고 들숲을 노래한다면, 온나라에 마을책집이 골목빛에 푸른빛으로 어우러지리라 생각합니다.


  다쳐서 아픈 데는 해바람비에 풀꽃나무를 품으면서 시나브로 낫습니다. 들을 밀고 숲을 밟고 바다를 등지니 온나라가 아파요. 이제는 잿집을 허물고 부릉길을 걷어내어, 누구나 맨발로 뛰놀고 쉴 숲마을을 열어야지 싶습니다. 푸른살림을 들려주는 책을 손에 쥐면서, 푸른말로 속삭이는 마음을 가꾸어야지 싶어요. 책꾸러미를 지고서, 어릴 적에 걷던 길을 따라 용현동부터 배다리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2023.3.3.첫/2023.5.25.3벌)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사울 레이터/조동섭 옮김, 윌북, 2018.5.30.첫/2022.4.30.고침)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19.1.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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