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풀죽임물 : 풀을 죽이려고 뿌리는 물은, 풀을 비롯한 뭇목숨을 모조리 죽이는 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풀죽임물’이 아닌 ‘농약’이라는 한자말 이름을 붙인다. ‘약국’이란 약가게일 텐데, 아프거나 앓을 적에 몸에 넣는 ‘약’은 참말로 돌봄빛이나 살림빛 구실일까? 모든 약은 거꾸로 살림길 아닌 죽음길(+ 죽임길)로 몰아붙이는 구실이지 않을까? 풀죽임물을 뿌린 땅에는 맨발이나 맨손으로 못 다닌다. 풀죽임물이 맨몸에 닿으면 살갗이 타들 뿐 아니라 자칫 목숨을 잃을 만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모든 낟알이며 남새이며 열매이며 과일에 이 풀죽임물이 듬뿍 스민다. ‘살림길 아닌 죽임길인 약’을 아무렇지 않게 자주 많이 먹는 서울살이(도시생활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살림물 아닌 죽임물인 농약’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시골살이로 굳어버렸지 싶다. ‘마약’만 죽임구렁이지 않다. 모든 ‘약’이 죽음수렁이다. 예부터 굳이 ‘약초’라 하지 않았고, 모든 약초는 낱낱이 짚고 보면 그저 ‘잡초’이고, 우리말로는 수수하게 ‘풀’이다. 우리말 이름 ‘풀’은 ‘풀다’를 밑뜻으로 품는다. 모든 찌꺼기를 풀어주는 노릇인 ‘풀’이고, 모든 숨빛을 품는 ‘풀’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푸른별(지구)’이라 한다. 푸른별이란, 사랑을 품고 풀꽃나무를 품어서,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살림을 풀어가는 즐거운 터전일 수 있다. 남들이 아닌 우리 스스로 ‘약·농약·마약·약초’라고 하는 꺼풀스러운 이름을 벗어던지면서 ‘풀을 품는 푸른살림’으로 거듭나려 할 적에 비로소 싱그럽게 깨어나고 거듭나고 날개돋이를 하리라. 2023.9.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밑에 붙이는 사진은,

요 몇 해 사이에

새롭게 나온,

'죽임물(농약)'을 허벌나게 뿌려대어

모든 거미와 새와 개구리에다가

사람까지 싹 죽여버릴 수 있는

'농약대포'이다.


"농약을 없애자!" 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길거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이 나라는 그저 썩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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