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커피 2023.6.12.달.



나방도 날고 나비도 날아. 무당벌레도 날고 바퀴벌레도 날아. 매도 날고 참새도 날아. 모두 다르게 날아. 닭은 날지 못한다고 여기는데, 날갯죽지를 누가 끊었을까? 좁고 어두운 우리에 잔뜩 가두어 꼼짝을 할 수 없는 판에, 먹고 누고 낳기를 되풀이하다가 풀썩 목숨을 앗긴다면? 짝도 아이도 없고, 배우는 삶도 없고, 해도 바람도 비도 없고, 별도 철도 없이 늘 똑같이 굴러가면서 하루가 흐르는 줄조차 알거나 느낄 길이 없는 데에서 차곡차곡 즈믄(1000) 해에 두즈믄(2000) 해에 석즈믄(3000) 해를 보낸다면, 너는 날갯죽지를 안 잊을 수 있을까? 날갯짓을 찾으려고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수렁은 그리 깊지도 넓지도 않아. 수렁에 빠지기에 못 나오지 않아. 서두르거나 싫어하거나 타오르면 외려 발목이 잡혀. 그저 숱한 못이요 모래밭이라 여기면서 한 발씩 옮기니 수렁에서 나올 수 있어. 어느새 누구나 커피를 마셔. 누구나 기름(석유)을 쓰고, 누구나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먼 나라에도 다녀와. 마음을 먹으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배우러 다닐 수 있어. 무슨 일이든 해볼 수 있고, 누구라도 만나지. 다 열 수 있고 틔울 수 있어. 이렇게 새로 피어나는 이 별에서 너는 무엇을 보니? 너는 커피라는 콩한테 어떤 기운을 띄워? 너는 콩알한테서 어떤 기운을 받니? 까맣게 우리는 물에서 밤빛을 품은 고요와 별노래를 헤아려 보니? 시커멓게 죽은 수렁을 보니? 숨결을 깨는 사람도 너고, 꿈을 깨는 사람도 너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