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우리 집으로 (2022.9.29.)

― 서울 〈테레사 그림책방〉



  엊저녁부터 의정부 한켠에서 보냈습니다. 아침에 서울 수유나루로 건너왔고, 햇볕을 쬐며 걷습니다. 첫가을 해바라기를 하며 다니는 사람은 드물고, 그늘로 오가거나 입가리개를 합니다.


  봉우리나 고개는, 헐떡이면서 넘는 맛으로 천천히 다가서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해를 듬뿍 머금고, 겨울에는 포근히 감싸는 해를 한아름 품습니다. 봄에는 푸르게 돋는 해를 춤추며 맞이하고, 가을에는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해를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어느새 〈테레사 그림책방〉 앞에 섭니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서 오기는 했으나, 책집지기님은 오늘 바깥일을 보시는 듯합니다. 스무 해쯤 앞서 서울 수유에는 책집이 꽤 있었습니다. 지난날에는 골목마을 한켠이나 어린배움터 곁에 으레 책집이 여럿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지면서 새로 작은 마을책집으로 태어납니다.


  책집 앞으로 볕이 들지는 않으나 등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쓰다가 만 노래꽃 ‘풀벌레’를 매듭짓습니다. 그림판에 옮겨적습니다. 책집 손잡이에 슬쩍 걸칩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아이들 주전부리를 장만할까?


  등짐을 짊어집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버스길에 글을 쓸 생각입니다. 버스나루에 일찍 가서 눈을 살짝 붙이려고 합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느긋이 쉬면, 무엇이든 즐겁게 이룬다고 느껴요. 부릉부릉 매캐한 서울이어도 골목 귀퉁이에서 돋는 풀꽃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풀벌레가 사르륵사르륵 나즈막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쫑긋합니다. 문득 파다닥 날갯짓하는 새를 말끄러미 봅니다.


  곰곰이 보면 긴 나날도 짧은 나날도 아닙니다. 모든 하루는 새롭게 반짝이며 즐거운 걸음걸이입니다. 포근히 쉬면 바람을 쐬고, 느긋이 가면 해를 머금습니다.


  요즈막(2022년) 서울 곳곳 골목길 바닥에 ‘여성안심귀갓길’ 같은 글씨가 큼직하게 있더군요. “안심할 사람”은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또 시골사람도 매한가지인데,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기에 ‘여성안심귀갓길’ 같은 글씨를 큼직하게 새긴다고 느껴요. 이렇게 갈라놓으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어른으로 자랄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안심귀갓길’이면 넉넉할 텐데요.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새롭게 담아낸 만화영화 〈My Father’s Dragon〉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하고 함께 보면서 수다꽃을 피우려 합니다. 오랜만에(?) 돌이가 만화영화 꽃님(주인공)으로 나왔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