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저물녘 오리노래 (2022.10.25.)

― 군산 〈그림산책〉



  가을이 깊을수록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갈겨울에는 빨래를 느즈막이 해서 일찍 걷고, 이튿날에 더 말립니다. 날이 추울 적에는 일찍 빨래를 해서 널면 얼어요. 아직 낮볕은 제법 넉넉하고, 밤노래가 그윽합니다. 〈봄날의 산책〉에서 볕바라기를 하면서 골목빛을 누렸고, 느슨히 〈그림산책〉으로 건너와서 저물녘 책빛을 헤아립니다. 이 가을에 설레는 마음을 바람 한 줄기에 담습니다.


  그림책 한 자락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여밉니다. 그림으로 여미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는 하루가 스밉니다. 우리가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하루는 스스로 느끼고 배우면서 밝히는 삶이고, 이 삶을 어떻게 녹이느냐에 따라서 그림결하고 글결이 사뭇 달라요.


  어버이는 아이를 품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아이한테서 사랑을 느끼고 배우는 눈빛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는 동안 어버이한테서 살림을 느끼고 배우는 손빛입니다. 어버이는 즐겁게 일하고 노래하고 살림하기에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춤추고 조잘조잘 말을 터뜨리기에 어버이한테서 물려주는 마음에 생각씨앗을 심고서 스스로 섭니다.


  배움터(학교)라는 곳은, 셈겨룸(시험)을 잘 해내어야 하는 데가 아니지만, 우리네 배움터는 ‘초·중·고·대’라는 이름으로 갈라서 ‘값(점수)’을 바라보도록 채찍질이에요. 배우는 터전인데 왜 ‘배움터’란 이름을 안 쓸까요? 가르치는 어른은 왜 ‘가르친다’고 말을 안 할까요? 우리 아이들은 ‘씨앗배움터(초등교육)’에서 스스로 마음에 생각씨앗을 심는 길을 마주하고, ‘푸른배움터(중등교육)’에서 스스로 푸르게 숲으로 우거지는 길을 익히고, ‘열린배움터(대학교육)’에서 스스로 꿈과 사랑을 활짝 열여서 온빛을 밝히는 사람으로 설 적에 아름다워요.


  그림책 몇 자락을 품고서 책집을 나섭니다. 길손집으로 걸어가는 군산 마을길이 캄캄합니다. 별바라기를 하고 싶으나 불빛이 이어요. 문득 멀잖은 곳에서 꾸르르꾸르르 소리가 납니다. 겨울오리 울음소리입니다. 겨울새 노랫가락입니다.


  노래로 여는 아침이란, 언제나 스스로 나비처럼 나는(노는) 웃음짓일 테고, 노래로 닫는 저녁이란, 늘 스스로 꿈을 밝히는 살림짓일 테지요. 나라(국가나 정부)라는 이름은 모두 허울(허상)이지 싶습니다. 우리 발자취뿐 아니라 푸른별 모든 발자취를 보면 우두머리(지도자)가 선 모든 곳에서 다툼(전쟁)이 불거졌어요. 우두머리가 아닌 어른이 있는 곳에서는 다투지 않아요. 나라가 없어도 사람들이 힘들 일은 없으나, 어른하고 어르신이 없다면 모두 헤매면서 고된 나날에 갇히겠지요.


ㅅㄴㄹ


《길고양이 연구》(이자와 마사코 글·히라이데 마모루 그림/고향옥 옮김, 웅진주니어, 2022.7.22.)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이현아와 여덟 사람, 카시오페아, 2020.12.29.첫/2021.12.24.3벌)

《WEE Vol.34 : PICTURE BOOK》(편집부, 어라운드, 2022.9.28.)

《WEE DOO Vol.23 : PICTURE BOOK》(편집부, 어라운드, 2022.9.2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