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비 2023.7.27.나무.



비는 그저 내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새롭게 갈 곳’만 그리면서 내려. 해는 그저 비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새롭게 알 곳’을 헤아리면서 비춰. 바람은 그저 불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새롭게 열 곳’을 바라면서 불어. 빗방울은 매캐한 서울 하늘에서 내리기에 싫어하지 않아. 몰랐니? 빗방울이 “서울은 매캐해서 싫어!” 하는 마음이라면, ‘싫은빛 빗물’은 모든 목숨을 말려죽인단다. 이러고서 아무런 비구름을 이루지 않아. 모래벌(사막)로 바꿔 놓지. 비는 어떻게 ‘싫음빛’으로 뿌릴 수 있을까? 너희 사람들이 모조리 ‘사랑 잊은 수렁’에 잠겨서 돈·이름·힘에 사로잡힐 적에 ‘죽음비’로 바뀐단다. 그래서 아무리 매캐해도, 아무리 쌈박질(전쟁)이어도, 아무리 삽질이어도, 비는 늘 부드러이 내리면서 씻고, 시원스레 쏟아지며 씻고, 찬찬히 오면서 씻고, 끝없이 이으면서 씻지. 비가 내리며 땅(뭍)에 있던 찌꺼기를 씻어서 비우기에, 땅(뭍)은 새숨을 입고서 빛날 수 있어. 게다가 비가 땅(뭍)에서 씻은 찌꺼기는 갯벌에서 갯목숨이 걸러주고, 바다가 푸근히 풀어준단다. 비·땅·갯벌·바다·하늘은 서로 다르지만 언제나 하나로 움직이면서 모두 바꾸지. 하나하나 바꾸기에 밝게 빛나. 물빛을 머금도록 북돋우기에 온누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에 삶을 담을 수 있어. 비처럼, 비답게, 비로, 깨어나면서 눈빛이 반짝여.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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