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매미 2023.7.13.나무.



가만히 꿈을 그리는 숱한 풀벌레 가운데 ‘매미’는 나무뿌리 곁에서 유난히 오래 꼬물꼬물 굼벵이로 살아가지. 다른 풀벌레는 알에서 깨면 이윽고 허물벗기를 거쳐 이내 하늘빛을 머금으며 날아다니려 하는데, 매미는 참으로 늦다고 여길 수 있어. 그러다 보니 ‘굼벵이’라는 이름을 “참 굼뜬 몸짓”으로 빗대더구나. 아무래도 ‘굼·굼벵·굼뜨다’는 같은 말밑이겠지. 구부정한 몸으로 고요히 곱게 꿈꾸는 숨결인 ‘굼벵이’는 “오래 걸리는 길을 가는 몸”이라 할 수 있어. 그러면 ‘오래’하고 ‘안 오래’는 얼마나 다를까? ‘일찍’하고 ‘때맞춤’은 어떻게 다를까? 뭘 얘기해도 안 듣고서 멋대로 잠드는 굼벵이일까? 그때그때 안 하고서 일곱 해나 열일곱 해씩 미루는 굼벵이일까? 그러면, 모든 꽃은 1∼2월이나 2∼3월에 피어야 할까? 모든 열매는 같은 때에 맺고 익어야 할까? 모든 사람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굴어야 할까? 너희 나라는 ‘6·3·3’으로 갈라서 배움터를 다니라고 금을 긋더라. 큰길(대학)은 ‘4해’를 다녀야 한다지. 그러면 ‘6·3·3·4’라는 16해라면 다 배우니? 또는 꼭 16해를 채워야 하니? 사람도 매미도 스스로 꿈을 품은 결대로 나아간단다. 숨을 얻고 몸을 입고 태어날 적에 품은 꿈이 있어. 이 꿈을 10살에 틔우건, 20살 30살 50살에 틔우건 대수로울 일이 있니? 매미더러 개미나 베짱이가 되라 할 수 없어.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빛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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