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3 전쟁용어 씨앗



  예부터 어른들은 비를 ‘비’라고 하면서 ‘비’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고 헤아리는 밑틀을 마련했습니다. 어린이 스스로 마음을 북돋우라는 뜻으로 삶·살림을 수수한 말씨로 담아서 살며시 들려주고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비를 바라보면 ‘빛납’니다. 빗방울마다 빛이 나요. 막상 빗방울을 손바닥에 얹으면 그저 물방울이지만, 구름에서 땅으로 내려오려고 하늘을 가를 적에는 ‘반짝이는 빛줄기’를 그립니다.


 바다랑 비


  바다가 있기에 비가 있습니다. 바닷물이 아지랑이라는 몸을 거쳐서 구름을 이루다가 빗방울로 이 땅에 드리웁니다. 이쯤은 어린배움터에서조차 가르칩니다만, ‘바닷물 = 아지랑이 = 구름 = 물방울 = 빗물’이라는 대목을 찬찬히 짚어서 ‘말’을 ‘마음’에 담도록 알리지는 못 한다고 느껴요.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울 적에 빛나는 빗방울을 받아 보면, ‘빈’ 물방울이곤 합니다. 바다에서 하늘로 아지랑이가 될 적부터 바닷방울(바다 물방울)은 몸을 비워요. 몸을 비워야 바다를 떠나 하늘로 오릅니다. 하늘로 오른 바닷방울은 가볍게 바람을 타다가 모이니 구름을 이뤄요. ‘구름’은 하늘에서 바람을 구르듯 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구름 = 하늘을 구르는 물방울’이란 속뜻입니다.


  빛나고 빈 물방울인 ‘비·빗물·빗방울’인데, 이 비가 내리기에 들숲바다가 새롭게 푸르고 빛나요. 내릴 적에도 빛나고, 내려서도 빛내는 빗방울이에요. 촉촉히 적시는 구실을 하고, 뭍에 있는 모든 쓰레기를 쓸고 씻고 터는 구실까지 합니다.


  비가 훑은 하늘은 새파랗습니다. 비가 안 오면 매캐합니다. 이 하늘비를 바라본 옛사람은 ‘비(빗자루)’를 삼았어요. 빗물을 머금고 자란 싸리나무나 갈대를 꺾어서 찬찬히 묶으니 비(빗자루)가 태어납니다.


  우리 머리카락을 ‘빗질’을 하면 반드르르 빛납니다. 빗줄기가 하늘과 땅을 빗살로 쓸고 씻어서 반짝이는 새빛을 드리우듯, 머리빗으로 머리카락을 고르면, 머릿결이 빛나지요.


 빚다


  비·빗물·빗방울는 자잘한 것을 쓸고 치우면서 새터를 이룹니다. 이리하여 ‘비’를 바탕으로 ‘비 + 짓다(지음)’을 나타내는 ‘빚다’라는 낱말이 태어나요. ‘빚다’는 “물을 써서 반죽을 하여 꼴을 새로 이루다”를 나타낸다고 할 만합니다. ‘반죽’이란, 흙하고 물을 섞은 덩이예요. 물(빗물)이 있어야 새로 이뤄요.


  수수하게 쓰는 낱말 ‘비’입니다만, ‘빛·비다·빗·빗자루·빚다’가 얽힌 실타래를 엿봅니다. 여기에 ‘빚’도 생각할 만해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빚’이 있고, 누가 크게 도와서 얻은 빛(보람)을 ‘빚’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게릴라성 호우’라든지 ‘호우주의보’라든지 ‘우천·우비·우산·우수’라든지 일본말씨나 온갖 한자말이 떠돌고, ‘물폭탄’처럼 ‘비’를 깎아내리는 말씨가 나타나더니, ‘극한호우’라고 하는 끔찍한 말씨까지 나옵니다. 이처럼 삶도 숲도 마음도 푸른별도 등지거나 갉아먹는 말씨로는 ‘비’가 왜 비요, 비가 맡은 길을 읽거나 생각할 틈이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는 굴레(일제강점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웃나라가 놓은 굴레도 있지만, 한겨레 스스로 굴레(군사독재)로 가둔 적이 있어요. 이웃나라 굴레가 드리우기 앞서는 임금붙이(왕권)라는 굴레(조선 봉건사회)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굴레를 들여다보면, 힘꾼(권력자)은 힘말(한자·한문·일본말)로 사람들을 억눌렀어요. 요새는 조금은 날개(자유)를 찾았습니다만, 날개를 펄럭일 틈이 없이 영어가 새롭게 힘말(권력언어)로 춤춥니다.


  여러 굴레를 돌아보면, 모든 굴레마다 굴레말·사슬말이 함께 춤췄는데, 하나같이 싸움말(전쟁용어·군사용어)입니다. ‘게릴라성 호우’라는 말에 깃든 ‘게릴라’라든지, ‘물폭탄’이라는 말에 끼어든 ‘폭탄’을 봐요. 굴레말이자 싸움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저버리거나 이웃을 멀리하거나 사랑을 잊어버리도록 내모는 사나운 말씨예요.


  전쟁용어가 일상용어가 되면?


  오늘날 둘레를 보면 “전쟁용어가 일상용어가 되었”습니다. 옷을 두툼하게 입는 몸짓을 ‘완전무장’이라 하더군요. 마음이 사르르 녹을 적에 ‘무장해제’라고 해요. 못생긴 사람을 ‘지뢰’라 일컫기에 소름이 돋아요. 사람을 얼굴로 갈라치는 말씨도 사납지만, ‘꽝(지뢰)’이 터질 적에 얼마나 끔찍한가를 우리 스스로 너무 모르거나 잊어버렸구나 싶더군요.


  싸움말을 삶자리에서 마구 쓸 적에, 이 나라(정부)는 매우 반깁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싸움말을 삶말로 받아들이면, 사람들 스스로 “우리 넋과 마음을 ‘싸움팔이(정부 군수산업 육성)’를 뒷받침하고 넓히는 씨앗”을 심는 셈이거든요. 아무 말이나 쏘아댄다고 할 적에 ‘총질’이라고 말한다면, 또 ‘속으로 곪은 잘못’을 밝히는 사람더러 ‘내부 총질’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면, 이런 말씨 하나가 ‘싸움팔이’를 키우는 끔찍한 씨앗으로 번집니다.


 씨앗공·씨앗구슬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얼추 1970년 무렵부터, 또는 1960년 즈음부터, ‘씨앗공’이라고 해서, 흙을 동글게 빚고 속에 씨앗을 놓고서 모래벌(사막)에 뿌리는 흙살림길을 마련했습니다. 일본에서 왜 이런 흙살림길을 헤아렸는지는 어렵잖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스스로 저지른 싸움수렁에서 무너질 즈음 ‘벼락꽝(핵폭탄)’을 맞아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어요. 쑥대밭을 살리려고 참으로 숱한 사람들이 흙살림을 슬기롭게 여미려 했습니다. 이런 몸부림 가운데 하나가 ‘씨앗공’입니다.


  메마른 벌판을 천천히 풀숲으로 바꾸는 일에 이바지하는 씨앗공이에요. 이 씨앗공은 일본을 비롯해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널리 받아들였습니다. 씨앗을 ‘촉촉흙’에 감싸 놓기만 해도, 씨앗 스스로 기운을 내어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거든요.


  그런데 이 씨앗공으로 벌판(사막)을 북돋우려는 흙길을 우리나라에도 받아들이려는 분들이 그만 ‘씨앗폭탄’이란 말을 함부로 퍼뜨립니다. ‘씨앗폭탄’이란 말을 마구 쓰는 분들은 ‘게릴라 가드닝’까지 하더군요.


  아주 끔찍합니다. 우리는 ‘폭탄’도 ‘게릴라’도 ‘전쟁’도 ‘독재’도 걷어내야 할 텐데요. 우리가 나아갈 곳은 숲일 테니 ‘숲말’을 생각하고 ‘살림말’을 나누면서 ‘사랑말’이 흐드러진 ‘사랑누리·숲누리·살림누리’를 이룰 일입니다.


  끔찍하고 사나운 미움씨앗으로 나아가는 죽음말 가운데 하나인 ‘씨앗폭탄(seedbomb)’입니다. 이런 죽음말·싸움말·미움말을 어린이한테 써서도 안 되지만, 어른끼리도 안 쓸 노릇입니다. ‘씨앗폭탄·물폭탄’처럼 바보스런 말씨를 치워내는 철든 어른으로 일어설 노릇입니다.


  씨앗공은 ‘씨앗구슬’이라 할 만합니다. 우리 스스로 눈을 뜨고 마음을 틔워 생각을 열 적에 비로소 온누리에 사랑이 싹틉니다.


 폭탄세일


  ‘물폭탄’이란 말씨는, 온누리를 씻어 주면서 들숲마을에 싱그러이 샘물을 대어 가뭄을 씻는 빗물을 나쁘게 바라보거나 멀리하도록 내몹니다. 이 죽음말은 어느새 곳곳에 번지니, ‘폭탄세일’이란 말씨로도 퍼집니다.


  사람을 죽일 뿐 아니라 땅도 죽이고 푸른별도 죽이는 끔찍한 ‘꽝(폭탄)’을 마치 ‘죽임짓·죽임길’이 아닌 듯 덮어씌우는 노릇을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총칼(전쟁무기)을 여느 삶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바라보도록 내몰아요. ‘폭탄세일’ 같은 말씨를 우리가 스스럼없이 쓰고 듣고 입으로까지 말하면, 나라(정부)는 아무렇지 않게 ‘총칼 만들기(전쟁무기 개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습니다.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 러시아입니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 쏘아대는 ‘꽝(폭탄·미사일)’은 하나에 1000억 원이 넘어가기도 하고, 웬만한 ‘꽝’은 아무리 값싸더라도 1∼10억 원이나 하게 마련이고, 이 비싼 ‘꽝’을 만들거나 건사하거나 다루는 일꾼(군인)을 두느라 또 어마어마하게 돈을 쓰지요. 살림 아닌 죽임으로 치닫는 데에 끔찍하도록 목돈을 쏟아붓는데, ‘폭탄세일’ 같은 말씨는 바로 이런 짓을 우리 스스로 무디게 바라보도록 길들이기도 합니다.


  둘레에 널리 퍼뜨리려는 뜻이라면 ‘퍼뜨리다’라는 낱말을 쓸 일입니다. 확 퍼뜨리려는 뜻이라면 ‘확’이라는 낱말을 쓸 일입니다. 꿈씨앗을 심으려 한다면 ‘꿈씨앗’이라는 낱말을 쓸 일입니다. 다른 낱말로 어느 일을 빗대려 할 적에는 ‘빗댐말’에 얄궂은 결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살림 아닌 죽음을 감추거나 숨기지는 않나 돌아볼 일입니다. 어린이한테 ‘장난감 총칼’이나 ‘물총’을 사주는 일조차 ‘작은 싸움놀이(전쟁놀이) 씨앗’입니다. 총칼을 다루는 짓은 ‘놀이’일 수 없습니다. 총칼이란 죽임짓이니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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