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유령 2023.4.9.해.



네가 머무르는 집은 어디 있니? 시멘트로 차곡차곡 겹쳐 놓은 높다랗고 똑같이 생긴 잿더미를 집으로 여겨서 머무르니? 마당이 없고, 새가 내려앉을 수 없고, 개구리가 함께 살아갈 수는 없지만, 파리·모기는 찾아갈 수 있는 죽음더미가 너희 집이라 여기면서 머무르니? ‘집’이란 “짓는 곳”이야. ‘머물기만 하’거나 ‘있기만 하’는 데라면 ‘집’하고는 멀지. 하루를 스스로 그려서 짓고,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그려서 지으려고 ‘스스로 오늘에 있는’ 데를 집이라 하지. 밥을 먹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잠이 들 수 있기에 ‘집’이지 않아. 밥·옷·잠은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지. 밥·옷·잠을 넘어서 생각·꿈·노래를 네가 마음에 지어서 펴려고 하는 자리가 ‘집·보금자리·둥지’이지. 그래서 너희 ‘몸’은 너희 “넋이 삶을 누리려고 빛이라는 기운을 담은 집”이야. 그러니까, “빛이라는 기운을 담은 몸”을 두거나 놓으면서 삶을 지을 수 있다면, “몸이라는 집이 깃들” 집일 텐데, 너한테 ‘지음’이라는 마음이 없으면, 네 넋이 네 몸에 머물더라도 너는 ‘삶이 아닌 틀에 박힌 쳇바퀴’를 되풀이하겠지. ‘유령’이란 “집이 없이 떠도는 넋”이야. 왜 유령한테는 집이 없을까? ‘지음이라는 마음’을 스스로 안 그리고 안 바라는 탓에 스스로 몸을 잊느라 잃었어. “넋이 깃들 몸”을 잊고 잃느라 “몸이 깃들 집”도 놓치거나 잊는단다. 스스로 생각해야지. 떠돌면서 헤매느라 꿈도 안 보고 사랑도 안 본다면, 넌 ‘산몸’이 아닌 ‘산 척하는 죽어가는 살덩이’일 뿐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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