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현수막 2023.7.3.달.
네가 사는 나라에서 네가 깃든 마을인 전남 고흥 도화면 기스락에 “우리 면은 마을발전기금을 받지 않겠습니다”라 적은 걸개천이 있더라. 넌 이 걸개천을 보며 무엇을 느끼니? ‘마을발전기금’이 궁금하니? ‘마을이장단’이 걸개천으로 밝힐 만큼 바뀌거나 거듭난다고 느끼니? 음, 너는 “그동안 받은 돈(발전기금)을 뱉어낼 뿐 아니라, ‘그동안 돈을 마구 받아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밝혀야 걸개천을 제대로 걸었다고 할 수 있지!” 하고 느끼는구나. 그래, 네가 그처럼 느낄 만해. 여태 낼름낼름 온갖 돈을 받아먹은 짓을 먼저 뉘우쳐야지. 이 뉘우침이 거짓이 아닌 줄 밝히겠다면 ‘먹은 돈’이 얼마인지 낱낱이 밝히고, 어디에 썼는지 밝히고, 다 돌려줘야 할 테고. 걸개천 하나 달랑 걸면 누가 알까? 시골에 살려고 온 사람한테 여태 받아온 것이 ‘돈’뿐일 수 없겠지. 돈을 비롯해 숱한 것으로 괴롭히거나 들볶았을 테지. 이런 걸개천으로 엿볼 수도 있는데, 글 한 줄이나 시늉이나 몸짓 하나로는 바꾸는지 고치는지 알 길이 없지. 참말로 바꾸거나 고치는 사람은 ‘바꾼다·고친다’라고 말부터 안 해. 부끄럽고 창피하니까 ‘마음으로 먼저 녹여’버리는 날을 보내고, ‘녹인 자리에 심을 사랑을 생각’하면서 보내지. 바꾸거나 고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난 이렇게 나를 바꿨어!” 하고 걸개천을 안 건단다. ‘바꿈’도 ‘지음’ 가운데 하나이기에, ‘고치에 깃든 애벌레가 고요히 고이 꿈을 그리’듯 말없이 먼저 모두 녹여서 바꿀 뿐이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