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집에 가려다가 못 간 이야기를

책집마실 글 한 자락으로

남겨 본다

.

.

숲노래 책숲마실


어른 얼 어린이 (2023.5.5.)

― 고흥 〈더바구니〉



  어제오늘 늦봄비가 아주 시원하게 이 시골을 적십니다. 시골은 늘 조용하되, 털털이(경운기)가 지나가거나 마을알림이 퍼지면 살짝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이 한때가 지나면 내내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가 함노래를 베풉니다.


  숱한 새가 어떤 노래를 들려주는가 하고 귀를 기울이면 바람노래가 섞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숨이자 하늘을 이루는 기운인 바람도 언제나 노래로 흐릅니다. 새는 바람을 타고서 날아요. 사람은 바람을 숨으로 삼아서 맞아들이니, 새처럼 바람을 읽고 탈 줄 안다면 홀가분히 하늘빛으로 젖어들며 노래하겠지요.


  이른봄부터 하나둘 깨어나는 개구리에 맹꽁이에 두꺼비입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두꺼비도 어디께 있겠거니 어림합니다. 두꺼비까지 깨어나면 뱀도 나란히 깨어날 테니, 뱀도 어디쯤 있으리라 여깁니다.


  올망졸망 봄맞이꽃이 푸릇푸릇 올라오면 이윽고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고, 겨울잠을 이루던 나비가 먼저 들숲을 가르더니, 꼬물꼬물 애벌레도 슬슬 나비로 날개돋이를 합니다. 바야흐로 풀밭은 풀벌레잔치를 이뤄요.


  오늘은 5월 5일, 이른바 어린이날이라 합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 들놀이나 나들이를 바란 분들은 섭섭하겠지만, 서울도 시원시원 늦봄비가 적시겠지요. 비가 오면 비놀이를 하면 됩니다. 호젓한 시골살이를 누리다가 오늘처럼 함박비가 쉬잖고 쏟아지면 옷을 훌훌 벗고서 알몸으로 마당에서 춤춥니다. 사람도 쇳덩이(자동차)도 아예 없고 오직 빗소리가 하늘땅 사이를 하나로 잇는 날에는 빗물을 마시면서 비씻이에 비놀이를 누려요.


  올봄은 삼월도 사월도 오월까지도, 비가 틈틈이 오면서 파란하늘을 베풀고 먼지구름을 싹 씻어 줄 뿐 아니라, 이른 봄더위까지 털어냅니다. 그나저나 5월 5일을 맞이해서 고흥 〈더바구니〉에서 ‘하루놀이터’를 꾸리기로 했고, 이날 이곳에서 ‘숲노래 우리말 수다꽃’도 가볍게 곁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제오늘처럼 함박비가 된바람하고 어우러져 듣는 날에는 시골버스가 안 다녀요. ‘비바람에 왜 버스가 안 다니느냐?’고 물을 만할 텐데, 고흥살이를 해보니 그렇더군요. 할매할배가 아무도 밖에 안 나오니 시골버스도 안 다닐 만합니다. 버스가 안 다니니 도화면 천등산 기스락에서 고흥읍을 거쳐 도양읍까지 시골버스로 다녀올 수 없습니다.


  엊저녁부터 새벽으로 이어 ‘어른 얼 어린이’ 세 낱말을 잇는 ‘밑말찾기(어원분석)’를 했습니다. ‘얼다·어울리다·얽다·짝·옭다’를 지나 ‘얼·알’을 ‘어른·어린이’가 어떻게 달리 품는가를 풀어 보았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어제는 깡똥바지 바느질로

저녁을 보냈다.

짬짬이 조금씩 하던 손질을

어제 마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