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4.30.

수다꽃, 내멋대로 40 모르는 책



  책집에 가면 ‘모르는 책’을 살펴서 읽고 산다. ‘아는 책’이나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사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예전에 읽어서 안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책’이라 여기면서 바라본다. 책숲마실(책집마실)이란, 모르는 책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만나면서, 새록새록 새기려는 꿈으로 읽고서, 싱글벙글 웃음꽃으로 살림을 스스로 짓는 매무새를 가다듬는 나들잇길이라고 느낀다. 책시렁을 돌아볼 적에는 ‘읽을 책’이나 ‘건사할 책’을 찾는다고 할 텐데, “찾는 책을 찾을 마음”이 아니라 “책집에 있는 책을 집어들어 읽을 마음”이다. 어느 책집에서나 책집지기하고 책손 사이에서는 “뭐 ‘찾는 책’ 있으셔요?” “네, 이런저런 책 있나요?”라든지 “사장님, 그런저런 책 있나요?” “네, 그런 책은 있고, 저런 책은 없습니다.” 같은 말이 자주 오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책집에 가든 “책 좀 보러 왔습니다.” 하고 짧게 말하고는 책시렁만 쳐다본다. 책집에 가면 ‘그곳에 있는 책’을 보려는 마음이다. ‘그 책집 그 책집지기가 여태 건사하고 추스르고 갈무리하고 품은 책’을 돌아보면서 ‘그 책집이 깃든 마을과 고을과 고장에 흐르는 숨결’을 느끼면서 읽는다. 더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바라거나 찾은 적이 없다. 그 책집에 있는 책을 문득 읽다가 장만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어 보는데 참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책이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고 보니 어쩐지 얄궂거나 허술하거나 모자라구나 싶다고 느끼는 책도 꽤 있다. 아직 모르던 책을 처음으로 만나거나 새삼스레 만나서 아름답다고 느낄 적이든, 이미 알든 여태 몰랐든 읽고 되읽는 사이에 허접하다고 느낄 적이든, 이 푸른별에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바라보고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하고 돌아본다. 저마다 뜻이 있으니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여민다. 저마다 하루를 살아가니 저마다 다른 눈길로 오늘을 바라본다. 낯익은 이름(글쓴이·펴냄터)에 매이면 눈썰미가 흐리게 마련이다. 낯선 이름으로 한 발짝 다가서면 눈망울이 빛나게 마련이다. 조각(지식·정보)을 외우려고 옆에 놓는 책이 아니다. 슬기(어진 눈빛·넋)를 북돋우면서 깨우려고 곁에 두는 책이다. 열 벌을 읽었든, 쉰 벌을 되읽었든, 다시 들출 적마다 ‘모르는 책’이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짚고 새길 줄 안다면,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가꾸면서 꽃으로 피어난다.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든지 ‘큰보람(큰상)을 받은 책’을 물결에 휩쓸리듯 빌리거나 장만해서 읽는다면 ‘내 눈(우리 눈)’을 스스로 잊다가 잃으면서, 틀에 박힌 굴레에 잠겨들면서도 굴레를 못 느끼기 일쑤이다. 한집에서 살아가는 아이어른 사이는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지만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어우러지는 사이로 살기에 서로 반갑고 포근하고 아늑하다. 누가 어제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고 이 일을 내내 들먹인다면 한집안이 아니다. 밤마다 고요히 잠들면서 꿈을 그리고, 아침마다 새로 깨어나면서 새마음에 새몸으로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다. 어제 읽은 책이어도 오늘 읽을 적에는 다르다. 지난해에 읽은 책도 올해 읽으면 다르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해마다 다르지. 해마다 다를 뿐일까? 날마다 다르다. 어느 하루라도 똑같은 모습이거나 숨결인 나무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를 자꾸 가지치기를 한다. 모든 나무가 날마다 철마다 해마다 다른데, 늘 다르게 자라는 숨결을 ‘가지치기’란 이름으로 싹둑 쳐낸다. 서울(도시)에서는 나무가 나무스럽지 않다. 꽃도 꽃스럽지 않다. 책도 책스럽지 않다고 할 만하다. 줄기가 곧고 길게 뻗으면서 가지가 숱하게 자라는 나무에 끝없이 돋는 새잎이 찰랑찰랑 춤추는 빛살을 느낄 적에 비로소 ‘나무를 조금 보았다’고 여길 만하다. 나무마다 깃드는 나비는 다 다르다. 나무마다 어떤 나비가 찾아드는지 살피고, 나무 한 그루에 새가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볼 수 있다면, ‘나무를 조금 더 보았다’고 느낄 만하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책을 읽고 마음을 가꾼다. 앞으로 얼마나 클는지 모르지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책집에서 책시렁을 돌아본다. 우리는 ‘모르는 줄 알기’에 배운다. ‘모르는 줄 모른다’면 배우지 않아 늙고 만다. ‘모르는 줄 아는 눈빛’으로 ‘아직 모르는 책’을 찾아서 새삼스레 한 발짝을 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