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문학동네 시인선 51
이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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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4.23.

노래책시렁 298


《반복》

 이준규

 문학동네

 2014.3.10.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셋 있습니다. 한때 다섯이었는데, 여느날(평일)에는 둘로 줄기도 합니다. 이 시외버스를 타려면 고흥읍으로 나와야 하고, 시골집에서 새벽바람으로 나와서 한 시간을 기다리면 첫 시외버스를 탈 수 있는데, 이러구러 서울에서 내리면 13시입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누구를 만나러 가자면 으레 8∼9시간을 길에서 보냅니다. 저는 시골사람이니 맨발에 고무신 차림새인데, 시골 할매할배도 논밭에서만 고무신을 꿸 뿐이라, 여느때(평소)에 시골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이 재미나 보이는지, 서울 한복판을 휘적휘적 걸으면 기웃기웃 쳐다봅니다. 《반복》을 가만히 읽고서 시골 푸름이를 떠올립니다. 시골 푸름이는 시골버스에서 대단히 말이 거칠어요. 다만, 혼자 시골버스를 타면 더없이 얌전해 보이더군요. 두셋이나 너덧쯤 무리를 이루면 누가 말리건 말건 시골버스에서 큰소리로 깎음말(욕)잔치를 내내 벌이지요. 이 아이들은 어쩌다 스스로 깎음질을 일삼는 바보짓을 늘 벌일까요? 집이나 마을이나 배움터 모두 고달픈 수렁이거나 막장이라서 시골버스에서 우쭐짓을 벌일까요? 글도 노래(시)도 읽지 않으면서 밑바닥으로 치달리는 시골아이한테, 또 서울아이한테 오늘날 ‘문학’이라는 치레말은 뭔 쓸모일까요. 


ㅅㄴㄹ


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따위 것들에 도대체 관심이 없다.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끓고 있는 물에 관심이 없다. 나는 끓고 있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타조에 관심이 없다. 나는 지나가는 새에 관심이 없고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 관심이 없다. 나는, 나는,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12쪽)


당신은 하얀 핸드백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나는 카페에 앉아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당신을 본다. 당신은 하얗고 작은 핸드백을 들고 걸어간다. 당신은 하얀 장갑을 끼고 있고 하얀 원피스를 입었고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구두를 신었다. 구두의 굽은 높지 않다. 당신의 머리는 금발이 아니며 당신의 머리는 검다. (하얀/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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