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즐겁게 기쁘게 사랑으로 (2022.10.17.)

― 서울 〈악어책방〉



  이튿날 아침에 서울 수유 안골에 깃든 푸른배움터에서 삶빛·삶말·삶길을 놓고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미리 서울에 머물러야 하기에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오늘로 〈꽃 피는 책〉에 이태째 헛걸음입니다. 어쩌다 서울마실을 하니, 이날 마을책집 지기님이 바깥일을 본다면 못 깃들어요. 〈나무 곁에 서서〉하고 〈호수책장〉은 달날(월요일)에 쉬는군요. 〈악어책방〉은 엽니다. 이곳 이야기를 익히 들었으나 좀처럼 발길이 못 닿았는데, 네 해 만에 깃듭니다.


  서울 화곡동은 예전에는 ‘볏골(禾谷)’이었지 싶습니다. 이 언저리가 논밭이던 무렵 살던 분을 만나지는 못 했으나, 이 둘레를 한창 파헤쳐서 집을 줄줄이 올리던 즈음부터 살던 분이 들려준 바로는 ‘서울이면서 서울스럽지 않게 논이 넓었다’더군요. 이제 이곳에서 논을 떠올릴 분은 드물겠지요.


  시골도 서울도 맨땅을 디딜 만한 데는 찾기 어렵고, 들풀하고 노닐 만한 빈터도 거의 없습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으레 새가 심습니다. 나무열매를 머금은 새가 훨훨 날다가 ‘씨앗을 품은 똥’을 뽀직 누어 주면, 새몸을 거친 씨앗이 새터에 드리워 새삼스레 무럭무럭 자라나며 푸르게 바뀌어요.


  나무를 심어 돌보려면, 새가 찾아들어 쉴 자리부터 마련하면 됩니다. 새가 찾아들어 노래하는 곳은 나무가 자라기에 어울립니다. 나무랑 새가 어우러지면, 이곳은 어린이가 뛰놀기에 즐거울 테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만하면, 어른과 어버이는 일터로 삼을 만하기에 넉넉하겠지요.


  〈악어책방〉을 비롯한 숱한 마을책집은 오늘날 어린이한테 고마운 쉼터이자 놀이터라고 느낍니다. 어린이가 마음 놓고 깃들어 멍하니 있을 만한 곳이 얼마나 될까요. 요새는 작은 마을쉼터에서조차 담배를 뻑뻑 무는 이들이 많습니다. 꼰대뿐 아니라 푸름이까지 마을쉼터에서 담배를 물어요.


  스스로 돌아볼 줄 안다면, 스스로 배울 수 있습니다. 낯설기에 두렵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낯설기에 놀랍고 기쁘게 새로 마주하면서 배울 만합니다.


  모든 아이는 다른 아이랑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어른은 다른 어른하고 똑같지 않아요. 일본 한자말로 가리키는 ‘장애’가 아니어도 누구나 다릅니다. 똑같은 겉옷을 입어도 속으로는 다른 마음과 숨결이 흐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별빛이요, 꽃빛입니다.


  다 다른 너랑 나는 서로 다르게 살아가며 서로 다른 눈망울로 서로 다르게 책 한 자락을 집습니다. 같은 책도 서로 다르게 읽고, 다른 책을 서로 나란히 읽습니다. 즐겁게 생각을 엮고, 기쁘게 마음을 여미어, 사랑으로 말꽃을 피웁니다.


ㅅㄴㄹ


《애정결핍》(고선영, 악어책방, 2020.8.20.)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고선영, 악어책방, 2022.10.20.)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7.11.)

《아빠 나랑 좀만 놀자》(최민혁, 악어책방, 2022.6.17.)

《모양모양 vol.2》(안미영 엮음, 양천문화재단, 2022.6.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