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0 고운말 미운말



  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고 묻거나 궁금한 이웃님이 많기에 으레 네 가지로 간추리곤 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곱거나 미운 말이란 없이 그저 ‘말’만 있을 뿐이며, 이 말이란 ‘마음’에 담는 ‘소리빛’이니, 그저 ‘말·마음·소리빛’만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여쭙니다.


‘좋은말’을 쓰려고 하면 배앓이를 합니다.

‘고운말’을 쓰려고 하면 속앓이를 합니다.

‘나쁜말’을 안 쓰려고 하면 마음이 뒤틀리고,

‘미운말’을 안 쓰려고 하면 마음이 죽어버립니다.


  말을 바라보는 네 가지 길을 적어 보았습니다. 이 네 가지 길을 듣고서 “그러면 어떤 말을 써야 하나요?” 하고 물을 만할 테지요. 이때에 다음처럼 들려줍니다. “오직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서, 노래를 부르듯이 즐겁게 쓰면 넉넉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얼른 찾아내려고 애쓰지는 마요. 애쓰면 애쓸수록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못 찾게 마련이에요. 그저 참나(참다운 나)를 고요히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하루를 그리면서 느긋이 살림살이를 가꾸면 되어요. 밥을 하고, 집을 돌보고, 옷을 짓고, 아이를 보살피는 하루를 살아내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자’는 마음으로 지내면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은 하루 만에 찾아내어 노래할 수 있어요. 때로는 한 달이 걸리고, 때로는 한 해가 걸리고, 때로는 열 해가 걸리고, 때로는 온(100) 해가 걸려요. 때로는 숨을 거두는 날까지 못 찾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날까지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찾지 못 한다면, “그렇구나. 이 삶에서는 사랑말을 못 찾았네. 못 찾을 수도 있구나. 고마워라.” 하고 되새기면서 “이다음 삶에서는 사랑말을 즐겁게 찾아야지.” 하고 웃으면 됩니다.


  바로 찾아내기에 대단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끝내 못 찾고 숨을 거두더라도 모자라거나 어설프지 않습니다. 찾아내기까지 오래 걸리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찾아내고 보면, 또는 끝내 못 찾아내고서 숨을 거둘 무렵이면, “사랑은 늘 곁에서 흐르는구나. 아니, 내가 여기에서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인 모든 나날이 언제나 사랑이었네.” 하고 느낄 만하지 싶어요.


  아이들은 때가 되면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기어다니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서고, 한 발짝 내딛고, 통통통 달리다가, 까르르 웃으면서 어버이 품에 폭 안기고서, 조잘조잘 말을 터뜨립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일곱 살이 되도록 이불에 오줌을 싸도 되어요. 아이가 열 살이 되도록 말길을 틔우지 못 해도 되어요. 걱정할 일이란 없습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그저 다르기에 스스로 삶을 누리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이웃집(다른 집) 아이들은 ‘다르다’고 바라보고 받아들이지만, 정작 우리 집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하고 다르다’를 미처 바라보지 못 하고 받아들이지 못 하는 나머지,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고단하거나 괴롭게 마련입니다.


  ‘다 다른 아이’는 ‘서로 닮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하고 이웃 아이가 닮아야 할까요? 우리 아이하고 이웃 아이는 다른걸요. 우리가 낳은 여러 아이가 있으면, 여러 아이는 구태여 닮아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두 어버이도 닮아야 하지 않아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다릅니다. 다른 두 사람이 굳이 닮아야 한다고 짜맞추려 하면, 두 사람은 몹시 고단합니다. 일을 솜씨있게 할 수 있고, 스무 해가 넘어도 일이 서툴 수 있어요. 서른 해가 넘어도 어쩐지 엉성하거나 바보스러울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다른 몸뚱이입니다만, 우리는 모두 같은 넋입니다. 이 대목만 알면 되어요. “다 다른 몸이기에, 넋빛으로는 다 같은 사랑”이기에, 서로 만나서 한집을 이루고, 한마을을 일구며, 한별(지구)을 품는 삶을 지을 수 있어요. 이렇기 때문에 ‘다른 마음을 다른 말로 서로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하는 하루’를 누리고 맞이합니다.


  낱말책을 통째로 외우듯 말을 다룰 줄 알아야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낱말’로 ‘스스로 그리거나 나타내거나 밝히고 싶은 마음’을 스스럼없이 터뜨리면 되어요. ‘다룰 줄 아는 낱말’이 적기 때문에 말을 못 하거나 글을 못 쓰지 않아요.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다른 사람을 닮으려고(따라하려고·흉내내려고)’ 하다 보니까 자꾸 엉켜요. 다른 사람 글쓰기나 말하기를 닮으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즐겁게 다루면 넉넉합니다.


  어린이는 책을 펴서 읽을 적에 ‘누가 쓴 책’인지 안 따지고 ‘어느 펴냄터에서 낸 책’인지 안 살핍니다. 오롯이 줄거리에 빠져들고 그저 이야기를 즐깁니다. 우리는 어른이란 옷을 입은 나머지 그만 ‘누가 쓴 책’인지 따지거나 ‘어느 펴냄터에서 낸 책’인지 살피고 말아요. 어린이처럼 모든 책을 ‘이름값을 안 보면서 읽어’야 마음눈을 틔웁니다.


  그러니까, ‘이름값을 안 보면서 책읽기를 즐기’듯 ‘더 좋은 말씨나 더 고운 말씨를 외우듯이 익히려고 애쓰지 않’을 적에 말하기도 글쓰기도 술술 열리고 트이고 샘솟고 흘러요. ‘더 나쁜 말씨를 꺼리거나 더 미운 말씨를 삼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그만 하고픈 말을 못 하고 쓰고픈 글을 못 씁니다.


  나쁜말이나 좋은말은 없습니다. 모든 낱말은 우리 삶을 다 다르게 그리는 소릿값이자 소리빛입니다. 미운말이나 고운말은 없습니다. 모든 낱말은 그저 우리 마음을 다 다르게 밝히는 소릿값이고 소리빛이에요.


  먼저 ‘마음을 꾸밈없이·그대로·고스란히·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숨결’을 되새기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넉넉합니다. 이처럼 말하기하고 글쓰기를 틔운 다음에, 조금씩 띄어쓰기를 배워서 가다듬어도 되고, 띄어쓰기가 어려우면 그냥그냥 써도 됩니다. 맞춤길은 얼마든지 틀려도 됩니다. 사투리도 신나게 쓰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마음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든요. ‘훌륭한 글’을 써내려고 글을 쓰려 하면 숨막힙니다. ‘빈틈없는 말’을 해내려고 말을 하다 보면 갑갑합니다.


  혀짤배기나 말더듬이라서 더듬더듬 말을 해도 되어요. 마음을 드러낼 줄거리하고 이야기를 생각해서 들려주면 되어요.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영 엉성하더라도, 속마음을 밝히고 속사랑을 펼치면 되어요. 나중에 책을 여미거나 새뜸(신문)을 엮을 적에 이웃님(편집자)이 도와주어서 띄어쓰기나 맞춤길을 손질하면 되지요. 처음부터 빈틈없이 몽땅 혼자 다 해내려고 하면 그만 글앓이(배앓이 + 속앓이)를 하다가 마음이 얹혀요(마음이 뒤틀림 + 마음이 죽음).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면 즐겁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마음을 그대로 털어내면서 수다꽃을 지으면 즐겁습니다.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나도록 생각해 봐요. 모든 풀꽃나무는 다 달라요. 소나무하고 잣나무가 다르고, 배롱나무하고 후박나무가 달라요. 같은 참나무라 하더라도 다 다를 뿐 아니라, 떡갈나무 한 그루에 돋는 잎조차 다 달라요.


  멋진 수다나 빼어난 수다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나도 말을 하고 너도 말을 하는 곳에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수다이면 즐겁습니다. 때로는 10분이나 20분쯤 길게 말을 하고서, 10분이나 20분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들으면 즐겁지요.


  우리말 ‘말’하고 ‘마음’하고 ‘맑다’하고 ‘물’은 말밑이 같습니다. 우리말 ‘이야기’하고 ‘잇다’하고 ‘있다’하고 ‘이다’하고 ‘이제·이곳’은 말밑이 같습니다. ‘바라보다’하고 ‘바라다’하고 ‘바람·바다’하고 ‘밭·바탕·밖’하고 ‘밝다·밤’도 말밑이 같지요. 마음을 물처럼 맑게 나타내기에 ‘말’입니다. 서로 말을 이어서 이제 이곳에서 함께 있는 사람인 말이기에 ‘이야기’예요. 바라볼 수 있기에 바라고, 바람을 담듯 바다로 너울거리면서 모든 숨결이 태어나고 자라는 바탕은 바람(하늘)이자 바다(밭)인 두 곳은 서로 다르면서 하나인 밤(밝은 어둠)입니다.


  마음을 잇는 즐거운 사랑으로 말을 주거니받거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생각을 열어서 눈길을 틔울 수 있기를 바라요.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심는 생각씨앗으로 삼아서 오늘 하루를 넉넉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새롭게 씨앗으로 움트거나 싹트거나 자랄 말 한 마디에 글 한 줄을 나긋나긋 주고받으면서 활짝 웃고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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