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지네 2022.8.20.흙.



개미도 지네도 잠자리도 이따금 너희를 물지. 너희가 너희 몸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숨구멍을 톡(또는 꽉) 틔워 준단다. 잘 보렴. 개미나 지네는 무척 높은 데에서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어. 멀쩡하지. 이와 달리 너희 사람은 어떠니? 조금만 높은 데라면 목숨을 잃더구나. 그리 안 높아도 쉽게 다치네. 맨땅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기도 하지. 몸을 입었되 몸을 영 못 다루는 사람들이야. 몸이 새롭게 깨어나거나 튼튼히 일어서도록 다스리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너희가 몸을 몸으로 제대로 못 돌보거나 못 다스린다면, 마음을 마음으로 제대로 못 돌보거나 못 다스린다는 뜻이겠지. 몸만 못 돌볼 수 없어. 몸돌봄이 엉성하면 마음돌봄도 엉성해. 마음돌봄이 서툴면 몸돌봄도 서툴고. ‘하나라도’ 잘 하기를 바라지 마. 모든 길은 나란히 흐르는 삶이야. ‘하나부터’ 모든 곳으로 잇는단다. 어느 하나부터 제대로 돌보든 다 훌륭해. 그저 ‘어느 하나부터’ 돌보려 하든 ‘하나는 늘 모두’인 줄 느낄 노릇이야. ‘하나만’ 잘 할 수 없어. ‘하나를’ 하듯 모든 길을 나아가고 모든 일·놀이를 한단다. ‘한 마디’ 말부터 삶을 열고, ‘한 톨’ 씨앗으로 숲을 이루지. ‘하나씩’ 해보기에 어느덧 한꺼번에 연단다. 지네나 개미나 잠자리가 너희 몸 곳곳을 잔뜩 물는지 모르는데, 아마 거의 ‘한’ 곳만 물겠지. 바로 이 ‘한’ 곳이 첫길이 되어 모든 곳을 부드러이 틔울 테니까. 곧, 너희는 ‘머나먼길’을 가는 삶이 아닌, 늘 첫걸음부터 한 발짝씩 내딛으면서 새롭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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