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11 자전거
부릉이(자동차)를 아는 사람은 슥 스쳐 지나가더라도 안다. 어느 곳에서 만들었고, 염통(엔진)은 어떠한지뿐 아니라,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고, 어디 말썽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느낀다. 자전거를 아는 사람은 슥 지나가더라도 안다. 어느 곳에서 만들었고, 톱니(체인)가 제대로 맞물려 흐르는지,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톱니결(체인비)을 똑바로 맞추어서 타는지, 톱니에 기름을 알맞게 먹였는지 아예 안 먹였는지 마구 쳤는지 환하게 느낀다. 이뿐인가. 걸상(안장) 높이를 제대로 맞추었는지, 발판을 제대로 구르면서 무릎하고 발목하고 허리하고 등뼈가 곧게 펴도록 타는지를 곧장 낱낱이 느낀다. 아직 어릴 적에 자전거집 할배가 척 보고 다 아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여쭈었다. “어떻게 다 알아요?” “얌마, 안 쳐다보고 소리만 들어도 안다. 모르면 우째 자전거를 손보거나 고치노?”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이 아이들이 말을 않더라도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즐겁거나 아픈가를 느낄 뿐 아니라, 말을 안 해도 무엇을 바라는가를 환하게 느끼고 알았다. 이러던 어느 날 곁님이 말하더라. “여보, 그대가 느끼고 알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입으로 말을 하도록 해주어야 해요. 아이 스스로 바로 그때 무엇을 바라는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하지 않아요?”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숱한 사람들은 자꾸 ‘글님 이름값·펴낸곳 이름값’에 얽매인다. 우리는 줄거리하고 이야기를 읽을 뿐인데, 왜 글님이나 펴낸곳 이름값을 읽으려고 할까? 툭하면 몇몇 노래꾼이 어느 나라 어느 노래를 슬쩍하거나 슬그머니 베꼈는가 하는 민낯이 불거진다. 때로는 여러 글꾼이 어떤 글을 훔치거나 가로챘는가 하는 멍청짓이 드러난다. 왜 슬쩍하거나 베끼겠는가? 바로 돈 때문이요, 이름 때문이며, 힘 때문이다. 슬쩍하거나 베껴도 마음으로 읽어서 느끼고 알아채려는 사람이 적은 탓에 숱한 노래꾼하고 글꾼이 훔치거나 베낀다. 숱한 사람들은 속빛을 읽고 나누거나 새기기보다는, 이름값을 누리려 하면서 거짓꾼한테 돈·품·마음을 갖다 바친다. 자전거를 모르는 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걸상(안장)이 너무 낮으면 무릎도 등허리도 발목도 등뼈도 온통 어긋나고 시큰거리면서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른다. 이뿐인가. 걸상을 그이 키높이에 맞추면 “이렇게 높게 앉으면 안 위험해요?” 하고 걱정하더라. 그러나 걸상을 키높이에 안 맞추기에 그야말로 대단히 아슬하다(위험하다). 걸상을 키높이에 맞추면 넘어질 일부터 없고 뼈마디하고 힘살이 다칠 일마저 없다. 눈가림에 거짓말을 일삼는 노래꾼하고 글꾼이 넘치는 이 나라에서, 눈가림도 거짓말도 아닌 참글을 쓰고 엮으며 책으로 여미는 수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참 많다만, 뜻밖에도 이분들 책은 그야말로 적게 팔리더라. 우리는 뭘 볼까? 뭘 두려워할까? 뭐에 허울을 뒤집어쓰고서 그만 눈을 감아버렸을까? 그러면 나는 자전거를 어떻게 아느냐고? 어릴 적에 와장창 온몸이 깨지며 넘어지기를 밥먹듯이 했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자전거를 달리면서 했고, 한 해에 자전거로 2만 킬로미터씩 달렸고,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서 열두 해를 이끌고 다니면서 그저 온몸으로 익혔다. 이러는 동안 눈감고도 자전거를 알겠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