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파랗게 물결치는 (2022.10.12.)
― 정읍 〈서울서점〉
미루지 말자고 생각하며 새벽바람으로 광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갑니다. 곧장 갈아타서 정읍으로 건너갑니다. 정읍나루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살피니 30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새벽부터 다섯 시간 남짓 버스를 탔으니 좀 걷자 싶어 두리번두리번 정읍 곳곳을 구경하면서 〈서울서점〉까지 걷습니다.
1킬로미터는 꽤 가깝습니다. 100미터를 고작 열 판 가면 됩니다. 2∼3킬로미터도 가깝지요. 동무랑 이야기하노라면 어느새 걷습니다. 혼자 거닐더라도 4∼5킬로미터는 거뜬해요. 달려갈 까닭이 없습니다. 큰길이라면 소릿줄을 귀에 꽂고서 노래를 듣고, 골목길이라면 새가 내려앉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푸나무도 숲짐승도 겨울에는 두툼히 입고 봄에는 가볍게 벗고 여름에는 새롭게 피어납니다. 비옷을 챙기지 않고 비롤 고스란히 맞아들입니다. 해가림을 안 하고 노상 모든 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살아내는 데에 온힘을 쓰면 밤에 깊이 잠들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면서 기운이 솟아요. 빛나는 숨결을 담은 책에는 햇빛이나 별빛이나 빗빛이 부드러이 스밉니다.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을 드러낸 소리’입니다. 말을 배운다고 할 적에는 마음을 소리로 옮겨서 나누는 길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요새는 “대화와 소통”이란 어려운 말에 너무 갇히고 기우는데, 막상 우리말이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가고, 우리 낱말책(사전)을 찬찬히 새기는 길을 헤아리면, 어느덧 말을 말답게 다루어 마음을 마음대로 돌보는 길을 열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제 〈서울서점〉에 닿습니다. 파랗게 물결치는 하늘이지만 조금 땀이 돋습니다. 책집 할머니는 이제 다리가 몹시 아파서 책집을 못 여는 날이 잦다고, 미리 전화를 하면 열어 주는데, 오늘은 마침 일찍 열었는데 손님이 왔다면서 반기십니다.
책집 할머니는 책자취(간기)에 붓(연필)으로 책값을 그려 놓았습니다. 미처 그려 놓지 못한 책도 있습니다. 골마루는 안으로 깊고, 안쪽에는 더 안칸이 있고 왼칸에 또 깊숙한 칸이 있습니다. 골목에서 얼핏 보면 그저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정읍이란 고장에서 책빛을 펴면서 책살림을 일군 손길을 곰곰이 어림할 만합니다.
나즈막한 자리에서 보는 모습도, 높이 올라가서 보는 모습도, 스스로 눈길을 틔우는 길입니다. 하늘빛을 담는 손도, 살림빛을 추스르는 손도, 붓을 쥐거나 책을 넘기는 손도, 스스로 눈을 밝히는 길이고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읽고, 읽으면서 넉넉히 피어나는 생각에 즐겁습니다.
《도시락 365日》(민경자 감수, 금성교과서, 1983.1.20.첫/1983.8.25.중판)
《소년소녀 세계명작왕국 16 우리나라 자랑》(이영철 엮음, 진현서관, 1981.5.10.)
《祖國과 함께 民族과 함께》(김대중, 한섬사, 1980.4.1.)
《바웬사》(프랑소와 고/장행훈 옮김, 예조각, 1981.11.10.첫/1981.12.23.2벌)
《實錄 眞相은 이렇다, 惡名높은 金正一의 正體》(김현수·오기완·이항구, 한국교양문화원, 1978.6.23.)
《마추삐추의 山頂》(빠블로 네루다/민용태 옮김, 열음사, 1986.2.20.)
《日本포켓가이드 1989年度》(아키야마 데루지, 재단법인 포린·프레스 센터, 1989.3.30.)
《춤추는 눈사람,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편집부, 인간사, 1985.11.25.)
《세일즈맨의 일기》(한상원, 풀빛, 1985.10.30.)
《미완의 귀향일기 상권》(홍동근, 한울, 1988.8.30.)
《이 땅에 살기 위하여》(박석률과 30사람, 녹두, 1989.9.30.)
《바람이 전하는 말》(조용필, 융성출판, 1985.9.30.)
《할아버지의 부엌》(사하시 게이죠/엄은옥 옮김, 여성신문사, 1990.5.10.)
《빛이 내리는 소리》(전원범, 아동문예사, 1976.10.25.)
《무동타는 아이들》(김윤배, 지방시대사, 1989.11.1.첫/1990.2.1.3벌)
《남영동》(김근태, 중원문화, 1987.9.30.첫/1988.6.10.3벌)
《동구 이야기》(김철성, 삼정, 2000.4.22.)
《여성취업과 탁아운동》(편집부, 등에, 1989.7.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