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 불온한 책 읽기의 문화사
강성호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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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7.

책으로 삶읽기 815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강성호

 오월의봄

 2021.7.29.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강성호, 오월의봄, 2021)은 책이름만으로 반갑게 집어들었는데, 정작 펼쳐서 읽자니 ‘혁명 꿈꾸기’하고는 다른 줄거리가 흐른다. 위아래(신분계급)를 갈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고단하던 조선이 흔들거리며 무너질 즈음 새나라가 서려 하다가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서 더욱 어수선한 틈에서 그야말로 새빛을 스스로 찾아내려고 애쓴 사람들이 곁에 둔 책을 짚으려고 하는 줄거리이다. 지난날 어른이나 사람을 섣불리 ‘혁명가’라 할 수 없다고 느낀다. 아기를 낳아 보금자리에서 수수하게 돌보는 모든 어버이도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아기를 낳고 돌보는 손길이 ‘살림이자 혁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살림이고 혁명일까? 글을 써야 혁명이지 않고, 총을 들어야 혁명이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야 혁명이지 않다. 오늘 여기로 끝낼 마음이 아닌, 오늘 여기에서 씨앗을 심고서 모레에 자라날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꿈을 사랑으로 새롭게 들려주는 몸짓이 언제나 빛나는 살림이요 혁명이다. 이런 밑살림을 글님이 미처 못 보고 못 느끼고 몰랐구나 싶다. 이러다 보니 글님 글결부터 매우 딱딱하다. ‘혁명을 꿈꾼’ 사람들 발자취를 책읽기로 더듬으려고 하면서 정작 ‘혁명하고 동떨어진’ ‘일본 군사제국주의 낡은 글결’을 그대로 써야 한다면, 어떤 살림과 혁명을 밝힐 수 있을까? 한자말 ‘독서’는 왜 붙여서 쓰고, 우리말 ‘책 읽기’는 왜 띄어서 쓸까? 무엇이 살림이자 혁명인가? “-의 독서는 -讀의 책 읽기”처럼 자꾸 글을 쓰는데, 무늬도 한글하고 동떨어진 그냥 일본말씨이다. “당시 독서 인구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239쪽)” 같은 글은 무늬는 한글이지만 일본말씨이다. “그무렵 책을 읽는 이는 거의 학생이었다”처럼 수수한 말씨로 가다듬도록 마음과 눈길과 생각부터 먼저 ‘뜯어고치기(혁명)’를 할 적에 비로소 ‘혁명을 꿈꾸는 책읽기’를 누가 어떻게 왜 얼마나 어디에서 하면서 씨앗을 남겼는지 귀퉁이 한 자락쯤 짚을 수 있으리라.



홍명희의 독서는 완독完讀과 남독濫讀의 책 읽기였다. (18쪽)


번역을 할 때 그가 취한 방법은 ‘중역’이었다. 홍명희는 일본어를 경유한 중역 방식을 고수했다. (24쪽)


김구의 독서는 독행일치讀行一致의 독서였다. 그의 독서에서 책과 삶은 분리되지 않았다. (93쪽)


자신이 원하는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이들을 ‘신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일찍이 조선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위협적인 존재였다. (119쪽)


일본 유학 시절 박원희는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에 관한 다수의 책을 읽었으리라 본다. (179쪽)


당시 독서 인구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살아가던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진학과 취업이었다. (2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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