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요새 ‘놉’이란 말을 아는 분은 드물리라. 어린이나 젊은이라면 모를 테고, 책을 꽤 읽었으면 얼핏 스쳤을 수 있으나, 잊히는 낱말 가운데 하나이다. 요샛말로 한다면 ‘품팔이·날품팔이’쯤이요, 지난날 지난삶을 돌아본다면 ‘가난하고 땅이 없이 하루하루 품을 팔아야 겨우 입에 풀을 바를 수 있는 살림인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을 하니 ‘놉’이라는 낱말은 알았되 딱히 쓸 일은 없었는데, 2011년에 전남 고흥 시골집에 깃들고 나서 ‘놉’이란 말을 마을 할배한테서 새삼스레 들었다. 마을 할배가 어릴 적하고 젊을 적에는 땅도 집도 없어서 이 집 저 집 빌붙으면서 ‘놉’을 오래도록 팔다가, “이제 이렇게 마을 귀퉁이에라도 집을 지어서 사오.” 하고 푸념이 섞였으나 숨을 다 돌린 듯이 말씀을 하시더라. 그렇다. 시골마을을 보면 귀퉁이나 기스락에는 언제나 가난집이게 마련이다. 시골에는 ‘이장’이 있고 ‘부녀회장’이 있다. ‘놉내기(놉을 팔거나 머슴으로 일한 사람)’ 가운데 ‘이장·부녀회장’으로 뽑혀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예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물리라 본다. 시골 면장·읍장은 어떨까? 시골 군수는 어떨까?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사람은 어떨까? 까마득한 옛날일 수 있는, 1950∼60년대까지 놉내기로 살던 분들은 아직도 뒷전으로 밀린다. 그리고 놉내기를 따돌리면서 우쭐거리는 한줌 힘을 드날리던 분들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마을은 차츰 늙어서 사라진다. 얼른 사라질 노릇이다. 이런 시골이라면 사라져야 마땅하다. 2023.4.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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