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2 놀이



  어린이 누구나 집·골목·마을을 비롯해 들숲바다하고 멧골하고 냇물에서 놀던 무렵에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기쁘게 일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신나게 놀면서 어우러졌어요. 어린이 누구나 어디에서도 뛰어놀 틈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이 걱정투성이입니다. 이제는 어른이며 어린이가 나란히 걱정꾸러기입니다. 어린이로서는 실컷 뛰놀 터전을 몽땅 빼앗기고, 어른으로서는 이웃하고 기쁘게 얼크러지며 땀흘리던 삶터를 잃었어요. 빈터를 차지하고 잡아먹는 부릉이입니다. 빈터에 들어서는 끝없는 가게입니다. 빈터마다 빼곡하게 박는 갖은 알림판(광고판)입니다. 눈을 느긋이 둘 틈이 없고, 숨을 가벼이 돌릴 틈이 없습니다. 서울도 시골도 온통 부릉부릉 시끄러워 멧새가 노래하고 바닷새가 춤추는 모습을 눈여겨볼 틈새가 없다시피 합니다. 예부터 어른들은 “책 좀 그만 읽고 놀아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종이꾸러미에 담은 줄거리가 알차더라도 먼저 몸뚱이를 바람한테 맡기고 들꽃한테 띄우고 해랑 눈비한테 보낼 적에 깊고 넓게 삶을 익혀 사랑에 눈뜬다고 여겼어요. 아이어른 모두 한 손에 책을 쥐려 한다면, 다른 손에는 신바람으로 놀이를 누릴 숲을 놓아야지 싶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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