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노랫가락 (2022.7.27.)

― 인천 〈딴뚬꽌뚬〉



  태어나서 자란 인천에서 조용한 나날이란 드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부릉이(자가용)를 건사한 집이 드물었기에 부릉거리는 소리는 얼마 못 들었지만, 집집마다 흘러넘치는 갖은 소리가 온마을을 휘감았습니다. 일하는 소리, 심부름하는 소리, 노는 소리, 꾸중하거나 우는 소리, 놀거나 웃는 소리,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우러졌습니다.


  큰길은 서울로 떠나는 커다란 짐차가 땅을 울리는 소리, 하늘은 갈매기하고 비둘기가 어우러진 소리, 땅은 참새하고 제비가 어울리는 소리, 여기에 뭉게구름이 피어나면서 다가와 소나기를 퍼붓는 소리가 흘렀어요. 짐을 실은 기차가 오가는 소리, 연탄공장에서 깜돌을 찍는 소리, 그리고 어느 집마다 있던 쥐가 갉거나 달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오늘날에는 온갖 소리보다는 부릉부릉 뒤덮는 소리 한 가지로구나 싶습니다. 숱한 소리는 어디 갔을까요? 뛰놀며 복닥거리는 어린이 노랫소리는 어디 있을까요? 아기를 달래며 자장자장 들려주는 말소리는 사라졌을까요?


  매캐하게 감도는 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걷다가 〈딴뚬꽌뚬〉에 깃듭니다. 똑같은 틀로 짜맞추는 부릉부릉이 아닌, 다 다른 삶결로 스스로 노랫가락을 지을 수 있다면, 어느 곳이나 보금자리로 가꿀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사랑받는 린드그렌 님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웃고 춤추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썼고, 안데르센 님은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서 눈물을 흘리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토닥토닥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몸짓으로 하루를 쓰는 눈빛일까요.


  나라(정부·사회)에 길든 글꾼(기자·작가)이 퍼뜨리는 글하고, 아이를 품고 바라보는 살림살이를 손수 돌보는 수수한 사람이 심는 글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한테 이바지할 글’은 쓸 수 없습니다. ‘모두한테 좋을 글’이란 없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글’을 쓸 뿐이고, ‘곁에 있는 아이 눈을 맑게 바라보는 글’을 쓸 적에 비로소 사랑씨앗을 꿈으로 그려낼 뿐입니다.


  작은책이든 큰책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값싼 판이든 비싼 판이든, 헌책이든 새책이든, 손수 장만하든 빌리든, 읽고 배워서 새롭게 펴는 마음이라면 모두 아름답습니다. 읽으면서 배우거나 새롭게 펴려는 마음이 없으면 으레 빈 껍데기입니다.


  아이들한테서 한소리·잔소리를 듣는 어른은 늘 새로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한테 한소리·잔소리를 하는 어른은 늘 쳇바퀴에 갇혀 허우적거려요.


ㅅㄴㄹ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6.22.)

《어느 아이누 이야기》(오가와 류키치 글·타키자와 타다시 엮음/박상연 옮김, 모시는사람들, 2019.1.25.)

《Graphic Novel 26 아기공룡 둘리》(박소연 엮음, 피오니, 2017.5.1.)

《닮다, 나와 비슷한 어느 누군가에게》(최하현, 부크크, 2020.10.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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