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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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3.12.

인문책시렁 292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이현아와 여덟 사람

 카시오페아

 2020.12.29.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이현아와 여덟 사람, 카시오페아, 2020)을 읽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저마다 어떤 삶을 보내는가 하고 밝히려는 줄거리 같지만, 이보다는 ‘어느 모임을 함께 꾸려’ 나가면서 삶을 어떻게 바꾸었다고 하는 ‘모임 알림글’ 같은 얼거리입니다.


  책 하나로 글을 여민 아홉 사람이 아홉 가지 눈길로 그림책을 바라보는 줄거리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림책에 마음이 끌려서 삶을 새삼스레 바라본다고 하는 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책도 나쁜책도 없기에 어느 책을 읽건 스스로 눈뜨는 징검돌로 삼으면 즐겁습니다. 굳이 좋은책을 들 까닭이 없고, 애써 나쁜책을 나무라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아이어른이 나란히 앉아서 어느 책에서건 어떤 삶과 눈길과 몸짓과 마음이 흐르는가 하고 곰곰이 짚으면 됩니다. 지은이·펴낸곳 이름값을 다 지우고서, 그저 그림책으로만 바라볼 노릇입니다.


  어느 지은이나 펴낸곳을 좋아하다 보면, 그만 이름값에 스스로 사로잡혀서 그림책이건 글책이건 어떤 속내이자 밑뜻인지 놓치게 마련입니다. 그림책을 잘 읽어내는 길은 없습니다. 그림책을 잘 읽어내야 하지도 않습니다. 그림책을 잘 뜯어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이 들려주는 가르침이나 이야기를 높이거나 낮출 까닭도 없습니다.


  서울에서 살며 시골을 이따금 놀러다니는 얼거리가 드러난 그림책은 이런 얼거리를 고스란히 느끼고 말하면 됩니다. 모든 어린이가 배움터(학교)에 다니지 않으나, 배움터에 안 다니는 어린이는 아예 생각조차 않는 그림책은 이런 얼개를 그저 그대로 느끼고 말하면 됩니다.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그림책을 찬찬히 보면, 굳이 ‘배움터(학교생활)’를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나라 그림책, 이른바 창작그림책에는 너무나 많은 그림책이 배움터(학교생활 + 학원생활)를 발판으로 삼고, ‘일하는 어머니 + 술먹는 아버지’란 틀에 갇힙니다.


  무엇을 그리고 바라보기에 저마다 삶을 새롭게 가꾸는 징검돌로 삼을 만할까 하고 처음부터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겉(현실로 드러나는 사실관계)’을 옮기기에 그림책일까요? ‘속(앞으로 이루려는 꿈을 사랑으로 참답게 담는 길)’을 담기에 그림책이지 않을까요? ‘일하는 어머니’를 아름답게 담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닭들이 이상해》라든지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같은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있어요. 바보스런 아버지를 자꾸 보여주면 사내란 놈은 그저 바보일 뿐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기 좋습니다.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이라든지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어요. 순이돌이가 저마다 어떤 살림빛을 지으며 나눌 적에 어깨동무라는 보금자리를 꾸릴 만한가 하고 상냥하게 넌지시 밝히기에 비로소 ‘그림책’이란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레오 리오니 님이 여민 《내 꺼야》 같은 그림책도 더없이 아름답지요.


  그림책을 ‘창작그림책’이나 ‘유명작가 그림책’이란 굴레를 씌우면서 들여다보는 ‘테라피 자격증 수업’은 이제 그만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이번에는 아이의 빈틈없는 진로 준비를 위해 아이의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맞춰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는 것은 엄마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지만, 그다음에는 손주를 대상으로 그 긴 레이스를 또다시 시작하신 분들을 자주 보았다. (23쪽)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고 난 뒤, 나는 내가 학생 시절 당했던 폭력을 똑같이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47쪽)


30대 중반이 된 내 몸은 10년 전의 내 몸과는 사뭇 달라 고집이 한껏 세져 있었다. 똑같은 양의 밥을 먹어도 쉽게 살이 쪘고, 며칠 스파르타식으로 연거푸 달린다고 해도 하루에 500그램씩 빠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때 먹히던 방법이 왜 이젠 안 듣지?’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96쪽)


파리에 머무는 마지막 날, 그날은 눈부신 햇살이 거리를 청아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시간을 내어 다시 어베이 서점을 찾았다. 선물처럼 우연히 발견한 이 매혹적인 책 공간에서 파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46쪽)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여름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처음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엄마는 창문 밖 살구나무의 안부에 제일 많은 관심을 보였다. (18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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