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작은책이 싹튼 밑힘 (2023.3.9.)
― 청주 〈중앙서점〉
오늘은 새벽 세 시 무렵 하루를 엽니다. 청주로 책숲마실을 갈 참이라 이래저래 글살림을 여미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짐을 꾸립니다. 아침 첫 시골버스로 고흥읍에 가고, 전남 광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탄 뒤, 대전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서, 이제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청주에서 내려 한참 걷습니다. 이 고장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고 읽다가 등판에서 땀이 흐를 즈음 시내버스를 타고서 충북도청 곁에서 내려 ‘청주 책골목’으로 갑니다.
2023년에 충북 청주에는 〈대성서점〉하고 〈중앙서점〉이 곧게 헌책집살림을 잇습니다만, 스무 해 앞서만 해도 헌책집이 열 곳을 아우르는 고장이었고, 서른∼마흔 해 앞서는 더 많았습니다. 청주에는 청주교대에 충북대처럼 배움빛을 헤아리는 젊은이가 꾸준히 물결쳤기에 새책집도 헌책집도 꽤 많았어요. 이제는 예전같지 않으나, ‘교대가 있는 작은고장’은 새책집·헌책집이 나란히 북적이면서 삶빛을 알뜰히 여미려는 숨결이 흘렀습니다.
겉이 허름해 보이거나 데께가 내려앉은 모습만으로 ‘헌책’이라 여긴다면, 책을 모르는 셈입니다. 손길을 닿아 즐거이 읽힌 뒤에 새롭게 닿을 손길을 기다리는 하늘빛을 품은 속빛으로 ‘헌책’을 마주할 적에, 비로소 책길을 열 만합니다.
헌책집을 드나들기에 ‘책을 알지’ 않아요. 새책은 아직 읽히지 않으며 기다리는 책이요, 헌책은 새롭게 읽히며 빛나려는 책입니다. 새책은 이제 막 태어나서 싹트려는 책이고, 헌책은 이미 씨앗이 트면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려는 책입니다. 책마을이 아름드리로 우거지자면 ‘책 = 새책 + 헌책’이라는 얼거리를 곰곰이 짚으면서 알뜰살뜰 북돋울 노릇입니다. ‘새책 : 새로 지은 손길이 새로 읽을 이웃한테 흐르는 책’이요, ‘헌책 : 이미 지은 손빛이 새로 가꿀 눈빛으로 퍼지는 책’입니다.
청주에도 ‘알라딘중고샵’이 있고, 이런 누리책집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굳이 손에 책먼지를 안 묻혀도 말끔한 책을 손쉽게 찾고 사고 되팔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알라딘중고샵’은 ‘바코드 없는 책’을 다룰 줄 모르고, 살필 길이 없어요. 온누리 헌책집은 마을에서 마을빛으로 지은 작은책(비매품·독립출판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서 오래도록 나누고 알린 책터입니다. 헌책집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마을책집(동네책방)은 싹조차 틔우지 못 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도 다루되, 거의 안 팔렸지만 뜻깊게 되읽으며 배울 어진 삶빛을 담은 책을 품은 헌책집을 잇는 밑힘을 청주시는 앞으로 얼마나 살리거나 키울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ㅅㄴㄹ
《맨발의 겐 2》(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이종욱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0.8.25.)
《맨발의 겐 9》(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익선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2.7.27.)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김명순 옮김, 두풍, 1987.10.20.첫/1989.1.30.중판
《어둠의 속》(조셉 콘라드/나영균 옮김, 자유교양사, 1989.7.15.)
《大地의 딸》(아그네스 스메들리/타혜숙 옮김, 한울, 1993.5.29.첫/1993.7.5.2벌)
《유태인의 천재들》(유안진, 문음사, 1979.9.10.첫/1980.8.30.중판)
《파름문고 44 사랑의 물레방아 下》(로렛타 깁슨/유종숙 옮김, 동광출판사, 1984.4.15.)
《지성문고 38 결혼》(알베르 카뮈/이재하 옮김, 동천사, 1988.7.15.)
《太白山脈 1》(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3.10.25.62벌)
《太白山脈 2》(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4.4.4.57벌)
《왕따 리포트》((주)가우디 엮음, 우리교육, 1999.5.15.)
《구름》(구드룬 파우제방/김헌태 옮김, 일과놀이, 2000.11.23.첫/2004.1.103.2벌))
《휴지 하나 시 하나》(윤상화, 푸른숲, 1992.7.10.)
《삼부경》(金水寺 이법홍 엮음, 안양암, 1964.)
《피안으로 가는 길》(제1군사령부 엮음, 제7지구인쇄소, 1977.)
《봄눈 개관기념, 詩의 여백이 있는 노트》(조희선, 꽃잠, 2016.9.24.)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유승희 옮김, 가나출판사, 1989.5.20.)
《문집 1호 우리 한 번 걸어 보자》(글다솜, 일터기획, 1994.3.31.)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현주, 삼민사, 1982.10.25.첫/1989.9.20.중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