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제는 (2022.5.31.)

― 고흥 〈더바구니〉



  오늘로 드디어 모든 시끌짓(선거유세차량)이 끝납니다. 곰곰이 보면 그들(정치꾼·공무원)은 늘 시끄럽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을 자랑삼아 떠들지 않는데, 그들은 뭘 했다고 떠들고 뭘 하겠다며 떠듭니다.


  굳이 잘난책(베스트셀러)을 안 읽습니다. 잘났다고 떠들썩하게 온갖 곳에 알림글로 채우는 책은 속이 비었거든요. 빈수레는 시끄럽습니다. 빈책(공허한 베스트셀러)은 자꾸자꾸 알림글을 여기저기 목돈을 띄워서 떠듭니다.


  삶을 삶답게 새로 읽으려고 할 적에 비로소 책집에 깃들어 스스로 차분히 하루를 되새길 만하지 싶습니다. 쇳덩이(자동차)를 내려놓고서 마을책집으로 천천히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는다면, 삶을 삶답게 읽을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쇳덩이를 빨리 달려 부릉부릉 끼이익 세워서 후다닥 사들이는 몸짓이라면 구태여 책을 읽을 까닭이 없어요. 빨리빨리 하고 싶으면 그냥 빨리 죽는 길이 낫습니다.


  둘레(사회)에서는 ‘병·병신’을 하염없이 나쁘게 여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낱말 ‘병·병신’은 하나도 안 나쁩니다. 이 낱말을 나쁘게 여기거나 쳐다보는 눈썰미가 ‘나쁘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병신 = 아픈 몸 / 앓는 몸’이란 뜻입니다. 아프거나 앓을 적에 비로소 몸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알아’ 가는 길이게 마련이라, 속뜻으로 놓고 보면 ‘아프다·앓다·병·병신’은 나쁜말일 수 없어요. 뜻을 모르니 함부로 쓰거나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사춘기’도 ‘앓이(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배움터(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는 봄앓이(사춘기)가 없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손수 풀꽃나무를 쓰다듬고, 몸소 흙살림을 짓는 푸름이도 ‘사춘기라는 병’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움터에 길들어야 하고 옭매여야 하는 모든 푸름이는 ‘사춘기라는 병’ 탓에 시름시름 앓아야 하고 아파야 하지요. 굴레에서 벗어나자니 끔찍하게 앓고서 털어야 합니다.


  자전거를 달려 〈더바구니〉로 옵니다. 반가이 읽을 책을 등짐에 챙기고서 새삼스레 천천히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갑니다. 55킬로미터쯤 달리는 자전거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습니다. 그저 멧길이자 들길이자 바닷길입니다. 우리는 종이에 앉힌 이야기도 읽지만, 두 다리로 디디는 바람길도 싱그러이 읽을 만합니다.


  우리는 왜 책을 안 읽을까요? 첫째, 우리 스스로 그들(정치꾼·공무원)이 된 탓에 빈수레처럼 떠들어요. 둘째, 쇳덩이를 부여잡느라 부릉부릉 빵빵빵 빨리 달리니 이웃도 참나도 안 봅니다. 셋째, 해바람비를 안 읽으니 숲도 종이도 안 읽습니다.


ㅅㄴㄹ


《한국 개미 사전》(동민수, 비글스쿨, 2020.12.20.)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이시무레 미치코/김경연 옮김, 달팽이출판, 2022.1.18.)

《제주도》(이즈미 세이치/김종철 옮김, 여름언덕, 2014.5.25.첫/2019.1.1.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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