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 / 숲노래 우리말

곁말 97 검흙



  사람은 흙을 일구어 논밭을 누릴 수 있지만, 사람 손힘으로 ‘검흙’을 짓지 못 합니다. 풀벌레가 잎을 갉으면서 똥을 누어야 하고, 지렁이랑 쥐며느리를 비롯한 작은목숨이 부스러기나 찌쩌기나 주검을 조각조각 갉아서 똥을 누어야, 시나브로 ‘깜흙’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심은 푸성귀만 있는 밭이라면 흙빛이 누렇거나 허옇게 마련입니다. 푸성귀 곁에 온갖 들풀이 어우러지면, 이때에는 풀벌레나 잎벌레도 딱정벌레도 노린재도 깃들 수 있고, 벌나비가 찾아들 만하고, 지렁이가 숨쉴 만하면서, 매미로 깨어나기 앞서 기나긴 해를 꿈꾸는 굼벵이도 함께 살아갈 만하니, 이러한 자리에서는 흙빛이 까무잡잡합니다. ‘까만흙’은 싱그럽습니다. 살아숨쉬는 흙빛은 검어요. 햇볕에 살갗이 타면서 까무잡잡한 아이들은 언제나 튼튼하면서 밝게 웃고 뛰놉니다. 햇볕을 온몸으로 머금으며 일하느라 살깣이 까만 어른들은 늘 어질고 참하게 살림을 건사하면서 기쁘고 새롭게 아이를 마주합니다. 어느덧 ‘검정흙’인 밭이 사라지고, 잿빛이 가득하면서 부릉부릉 시끄럽고 매캐한 나라로 바뀌는데, 이제부터 새삼스레 ‘검은흙’인 숲누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요. 구수하면서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흙은 까맣습니다. 모두 살아가는 땅은 넉넉합니다.


ㅅㄴㄹ


검흙 (검다 + 흙) : 검거나 까무잡잡한 빛깔로 살아숨쉬는 흙. 주검·부스러기·찌꺼기·풀잎·나뭇잎·가랑잎·열매를 비롯한 숨결이 몸을 내려놓고서 흩어질 적에 지렁이·쥐며느리·작은목숨이 갉거나 걸러서 새롭게 태어나면서 검거나 까무잡잡한 빛깔이 되는 흙. (= 검은흙·검정흙·까만흙·깜흙. ← 부엽토)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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