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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클리닉 1
카루베 준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2023.2.22.
헛발질 ‘저출산대책’은 이제 그만
《푸른 하늘 클리닉 1》
카루베 준코
최미애 옮김
학산문화사
2005.2.25.
《푸른 하늘 클리닉 1》(카루베 준코/최미애 옮김, 학산문화사, 2005)를 되읽습니다. 파란하늘처럼 돌봄이(의사)라는 길을 걸어가기까지 어떤 굴레나 수렁에 잠긴 채 곁을 못 보는 얕은 마음이었는가를 차근차근 짚으면서 응어리를 푸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이 그림꽃은 어릴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서 돌봄이 삶길을 걸은 아가씨가 퍽 오래도록 ‘아픈이(환자) 얼굴은 안 쳐다보고 기계처럼 일만 하’느라 딱딱하게 시들어 버린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부터 그립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아이 얼굴을 안 바라보면 어버이일 수 있을까요? 가시버시로 짝을 맺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안 쳐다보면 가시버시일 수 있을까요? 동무랑 어울리면서 얼굴을 안 들여다보면 참말로 동무일까요?
가만히 보면, 온나라 벼슬꾼(공무원)은 사람들(민원인) 얼굴을 안 쳐다봅니다. 시골 면사무소나 군청도, 서울 동사무소나 시청도 매한가지예요. 그들(공무원)은 사람들 얼굴이 아닌 ‘셈값(주민등록번호라는 숫자)’만 쳐다봅니다. 돈터(은행)도 매한가지예요. 돈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들 얼굴을 볼까요? 그들(은행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 ‘셈값(계좌번호·돈)’만 들여다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우리 얼굴을 스스로 쳐다보는 하루인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우리부터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는지 곱씹을 일입니다. 서로 마음을 헤아리고 꿈을 바라보고 사랑을 그리는 눈길인지, 아니면 마음도 꿈도 사랑도 등진 채 쳇바퀴마냥 셈값(숫자)에 얽매여 허덕이는 나날인지 생각해야겠습니다.
《푸른 하늘 클리닉》에 나오는 돌봄순이(여의사)는 그냥그냥 쳇바퀴처럼 ‘실적 많이 올리는 의사’로 자리를 잡아 가다가, 어느 날 문득 ‘아픈이 얼굴’을 처음으로 바라보았고, 사람(환자도 의사도 간호사도)은 누구나 ‘숨결이 흐르는 빛’이라는 대목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이러면서 서울(도쿄)을 한동안 떠나서 두멧골(외딴섬)에서 작은 돌봄이로 이태를 지내면서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을 보면, ‘시골 보건소 의사’ 자리는 텅텅 빕니다. 한 해에 몇 억 원을 준다고 해도 안 들어옵니다. 이뿐 아니라, 시골(군 단위)에서 고을지기(군수)는 시골을 살리는 작은길이 아닌, 목돈을 시골로 끌어들여 되도록 크게 삽질판을 벌인 다음에 뒷돈을 빼돌리는 데에 힘을 쏟아요. 막상 ‘시골살리기’에 마음이며 힘을 기울이는 벼슬꾼(공무원)이나 고을지기(군수)는 없다시피 합니다. 해마다 ‘저출산 대책·귀촌대책’이라며 어마어마한 돈을 써대지만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습니다.
작은 그림꽃 《푸른 하늘 클리닉》은 우리가 어떻게 마을을 살리고, 아이를 사랑하고, 어른으로서 슬기로이 살림을 짓고, 이웃으로서 사귀는 참길을 조곤조곤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책이름을 ‘푸른 하늘 클리닉’으로 붙인 대목은 아쉬워요. 하늘은 파랑이니 ‘파란하늘 돌봄터(진료소)’로 붙여야 올바릅니다. 하늘빛하고 바다빛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은섬에서 파랗게 물드면서 스스로 빛나는 마음을 노래하는 그림꽃을 곁에 두면서 ‘돈 안 되는 작은사랑’을 헤아리는 벼슬꾼하고 고을지기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의미 없어요. 단순히 숫자의 나열일 뿐이잖아요.” “네?”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아요.” (42쪽)
“엄마는 널 낳으면 죽는다고 선고를 받았었어. 하지만 엄마는 꼭 낳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모든 의사들이 손을 뗐어. 아빠는 낳지 말자고 애원했어.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 무사히 태어났고, 엄마는 널 바라보며 말했어. ‘난 기적을 낳았구나. 이 애는 기적의 아이야.’” (47쪽)
“고마워. 아오이는 내 은인이야. 정말로 고마……. 울어 주는 거야? 날 위해서. 널 한 번은 버렸던 날 위해서.” (93쪽)
‘생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수의 별이었다. 나는 지금 섬에 있구나. 이곳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바다를 보고, 같은 별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곳을 좋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116쪽)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었다. 시골 의사라면 무조건 우습게 봤다. 엘리트 의식의 덩어리였다. 분명히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 병원 그만둬…….’ (147쪽)
“아무리 그리워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예요. 우린 많이 봐 왔어요.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섬을 버린 사람들을. 수도 없이.” (17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