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펼쳐 2022.3.1.불.
펼쳐놓아 봐. 펼친 곳에서 무엇을 할는지 아직 몰라도 돼. 머리가 멍해도 되고, 손이 안 움직여도 돼. 바로 하거나 빨리 해야 하지는 않거든. 그대로 두렴. 뭔가 돕거나 꾸며야 하지 않아. 뭘 더 해놓거나 해줄 일은 없어. 비면 비는 대로, 차면 차는 대로 두렴. 언제나 그대로 어울린단다. 바람은 어느 곳에나 가만히 불면서 모두 어루만지지. 바람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풀꽃나무는 시들어. 잘 보면, 뿌리도 줄기도 잎도 고루고루 바람을 먹는단다.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면 어느새 시들거나 곪거나 썩어. 바람이 들기에, 이 바람에 햇볕이나 빗물이 감돌면서 사르르 녹으며 스민단다. 기름진 흙도, 메마른 흙도, 잎이 지며 차곡차곡 쌓인 흙도, 풀벌레가 살아가는 흙도, 모두 바람을 같이 머금으면서 푸르지.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안다면, 네가 아는 만큼 마음을 죽 펼쳐놓으면 돼. 아직 모르겠다면, 모르는 대로 그저 펼쳐놓으면 되지. 펼쳐놓기에 바람이 살살 어루만지면서 군힘을 씻어 준단다. 펼쳐놓으면 바람이 슬슬 토닥여서 울퉁불퉁한 데를 고르게 품지. 네가 받고 싶은 햇빛·별빛·꽃빛·흙빛을 물끄러미 보듯 생각하면서 펼쳐놓아. 네가 짓고 싶은 손빛·얼굴빛·말빛·숨빛을 구름을 보듯 천천히 펼쳐놓아. 바람줄기는 언제나 코끝부터 온몸을 돌고, 살갗부터 온몸을 휘감아. 바람줄기가 몸 구석구석을 돌기에 너는 네 몸을 움직일 수 있어. 바탕이 물이기에 싱그럽고, 이 물은 바람이 흘러서 움직이기에 삶을 누리지. ‘물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며 삶을 이루’니, 이 삶은 저마다 다른 ‘별씨앗빛’이 되어 네 모든 곳에 드리운단다. 뜨는 해를 봐. 뜨는 햇빛은 모두 사랑한단다. 지는 해를 봐. 지는 햇살은 모두 생각하지. 사랑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하루가 찬찬히 흘러. 하루가 찬찬히 흐르는 길을 바라보기에 너는 늘 너라는 빛을 그대로 돌볼 수 있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