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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신 유희정신 - 어린이문학의 길 ㅣ 이오덕의 문학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20년 2월
평점 :
이오덕 읽는 하루
― 서울을 버리고 숲을 품기
《詩精神과 遊戱精神》
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4.25.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1977년에 처음 나온 책은 “詩精神과 遊戱精神”처럼 한자로 적었기에, 이 한자를 못 읽느라 선뜻 손이 안 갔다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펴면 ‘한자를 드러낸 대목’은 없다시피 합니다.
이오덕 님은 뒷날 《우리글 바로쓰기》를 펴냈지만, 전두환이 이오덕 님을 어린배움터에서 솎아내며 괴롭히던 때까지 글에 곧잘 한자를 썼습니다. 어린배움터에서 마지막까지 아이 곁에 있지 못 하고 떠나야 하고 나서,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이태 동안 가르친 적이 있는데, 이무렵 우리나라 젊은이가 글을 너무 못 쓰고 말을 너무 모르는 줄 깨달았다지요. 우리 젊은이가 왜 이토록 말글을 모르는가 하는 뿌리를 파헤치면서 ‘우리말 우리글’부터 제대로 들려주고 배우지 않으면 이 나라가 통째로 썩고 뒤틀리고 흔들릴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1990년 앞뒤로 몹시 바쁘게 하루를 보내었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여린 몸이 더 지치고 말아 끝내 드러눕다가 권정생 님보다 먼저 흙으로 돌아간 이오덕 님입니다. 그동안 써낸 책 가운데 《시정신과 유희정신》만큼은 쉬운 우리말로 고쳐쓰고픈 마음이었지만, 옛글을 고쳐쓰기보다는 새글을 쓰는 일에 더 힘을 쏟느라 《시정신과 유희정신》은 1977년에 나온 판 그대로 남았습니다.
총칼을 휘두르는 우두머리가 춤추던 1977년 무렵, 이 나라 앞길을 헤아리면서 꿈씨앗처럼 남긴 두 마디인 ‘시정신’하고 ‘유희정신’을 오늘 우리 어린이한테 들려줄 쉬운말로 옮기자면 ‘노래얼’하고 ‘놀이넋’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 → 노래얼이랑 놀이넋”입니다. 한자말 ‘정신’을 앞뒤에서 다르게 풀었는데, 노래를 부르고 나누는 숨결은 ‘얼’을 차리면서 스스로 ‘알아’가는 길입니다. 놀이를 하고 노느는 숨빛은 ‘넋’을 깨우면서 ‘너나’없이 하나로 가는 살림입니다.
우리말 ‘노래·놀이’는 말밑이 같습니다. ‘노’는 ‘높다·노을’하고도 맞물리고, ‘노을’을 줄인 ‘놀’은 ‘너울’을 가리키기도 하고, ‘노느다·나누다’로도 잇닿아요. ‘놀·너울’이란 ‘널리’ 뻗는 길이자, ‘너머’로 가는 다릿길입니다. 노래하고 놀이를 하기에 ‘넉넉’히 마음을 가꾸고, 누구하고나 ‘나눌’ 줄 아는 착하고 참한 숨소리로 퍼져요. 높이높이 오르는 노랫가락은 어느새 하늘에 닿아 파랗게 물드는 바람으로 번지고, 이 바람은 휘파람으로 감기고, 바다로 물결치고, 바닥(땅)으로 내려와서 마음밭(마음바탕)을 이룹니다.
노래하고 놀 줄 알기에, 나비처럼 날개돋이를 하면서 홀가분하게 날아오르는 ‘나’를 만나요. 노래를 잊거나 빼앗긴다면 놀지 못 할 뿐 아니라, 날개가 꺾이고 ‘나’를 잃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린이가 노래하고 놀지 못 하도록 틀어쥐거나 억누르거나 짓밟으면서 셈겨룸(시험)으로 내모는 오늘날 배움터란, 어린이를 죽이는 수렁입니다. 모든 어린이가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마음껏 노래하고 놀도록 울타리를 걷어내고서 하늘빛으로 어울리는 ‘우리다움’을 찾을 적에 비로소 홀가분(자유)히 나래를 펼 수 있어요.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보면, ‘구경(완상玩賞)’이란 무척 무시무시한 짓이라는 대목을 낱낱이 밝힙니다. 구경꾼 어른이 어린이를 꼭두각시로 내모는 짓이 ‘동심천사주의’이고, 이 동심천사주의는 ‘윤석중·박목월·유경환’이 이끌었는데, 어느새 ‘동심천사주의 윤석중·박목월·유경환’ 같은 이들이 어린글밭(아동문학계)을 집어삼켰습니다. ‘구경 아닌 삶짓기’를 글(시·동화)로 담아내어야 어른일 텐데, 막상 우리나라에는 어른스레 글을 여미는 손길이 얕았고, 하나같이 돈(상업주의)에 팔려 ‘구경(완상)’하는 겉치레만 쏟아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나마 《시정신과 유희정신》이 처음 나온 1977년 무렵만 해도 아직 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뒤 쉰 해 가까이 흐르는 동안 시골은 아작났습니다. 이제 거의 모두 서울(도시)에서 살고, 서울에서도 잿집(아파트)에서 삽니다. 큰고장에서 골목집 살림을 잇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나 마당을 누리면서 풀꽃나무를 흙에 묻고 돌보는 손길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느 풀꽃나무도 꽃그릇을 안 반깁니다. 꽃그릇은 나쁘지 않되, 풀꽃나무한테는 사슬터(감옥)입니다. 그릇 크기를 넘게 자라거나 뻗을 수 없으니, 풀꽃나무로서는 그릇에 심기면 ‘갇혀’ 버리는 꼴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모든 꽃그릇을 걷어치우고서 맨땅에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를 심을 터전으로 가꾸려나요? 우리는 언제쯤 높다란 잿집을 걷어내고서 누구나 ‘마당·텃밭을 누릴 조촐한 집’을 보금자리로 삼으려나요? 우리는 언제쯤 어린이를 ‘배움터(학교)란 이름인 사슬터(감옥)’에서 풀어놓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서울에 갇혀’서 ‘풀꽃나무를 꽃그릇에 가두’는 손길이기에, ‘어린이를 울타리(학교·학원)에 가두어’ 놓고도 ‘가르침(교육)’을 시킨다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둘레를 봐요. 시골에도 서울에도 빈터랑 풀밭이 사라졌습니다. 어린이가 뛰놀거나 쉬거나 깃들 데가 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쇳덩이(자동차)가 모든 곳을 차지하고, 시골에서는 죽음물(농약)하고 비닐이 몽땅 뒤덮습니다.
갇힌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고작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는 손전화 빼고 무엇이 있을까요? 뛰놀 수도 쉴 수도 없도록 갑갑한 ‘꽃그릇 수렁(보기좋은 감옥)’에 갇힌 어린이를 알아보지 못 하는 눈길이니, 예나 이제나 숱한 글(동시·동화)은 ‘동심천사주의’에서 못 헤어나옵니다. 이뿐 아니라 ‘사실적 표현’을 한다는 글조차 ‘학교·학원생활 울타리’에서 못 벗어납니다.
2020년을 넘어선 뒤로는 ‘이웃빛(동물권)’을 담는 글이 하나둘 나오고 배움책(교과서)에도 실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숲에서 안 살고, 시골을 떠났고, 서울 높다란 잿집에서 쇳덩이를 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빛 글(동물권 문학)’을 쓸 수 있을까요? 흙을 밟지도 만지지도 않으면서, 풀꽃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해바람비를 마시는 터전에서 함께 살아가지도 않으면서, 참말 어떻게 ‘이웃숨결을 헤아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모두 겉발린 허울이지 않나요?
오늘날처럼 온통 잿더미에 먼지투성이로 매캐한 판에서는 ‘그냥그냥 녹색·초록·그린·친환경·자연·생태’를 들먹이는 글이 아닌, ‘수수하게 숲을 품고 스스로 푸르게 하루를 노래하는’ 글을 쓰고 읽고 나눌 노릇입니다. 이제는 글을 쓰려면 서울(도시)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른’이란 이름을 밝히고 싶다면 모든 허울을 떨치고서 쇳덩이(자동차)를 버리고 잿집(아파트)에서 나와야 합니다. 맨몸으로 해바람을 쐬고, 맨손으로 빗물을 받고, 맨발로 풀밭에 서서 우리를 둘러싼 이 별빛을 오롯이 누리고 살림을 짓는 사랑을 일굴 노릇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마당·텃밭이 있는 조촐한 보금자리’를 어린이랑 오순도순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서른 해이고 가꾼 뒤에 붓을 들어야지요. ‘농사·농업’이 아닌 ‘여름지이·열매짓기·흙살림·들살이’를 해야지요. 돈바라기에 갇히는 ‘농사·농업’이 아닌 ‘손수 살림을 짓는 숨결로 손수 들숲바다를 맞아들이는 작은길’을 갈 적에라야 붓을 쥐어 글을 쓸 만한 사람인 어른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이 한숨을 쉬면서 나무란 ‘훔침글(표절작가)’ 이야기라든지 ‘겉치레글(위선·허례허식·가식적 문장)’은 우리 스스로 ‘어른 아닌 늙은이’인 몸으로 돈·이름·힘에 얽매였기에 불거집니다. 철이 들면서 어질고 참하고 착하면서 고운 사람이기에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고서 나이를 앞세워 그저 윽박지르며 높낮이(위계질서)를 가르기에 ‘늙은이’입니다. 이른바 ‘선생·원로·기성세대’는 모조리 늙은이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곁에 서려면 ‘선생·원로·기성세대’ 같은 고리타분한 허물을 싹 털어내고서 수수하게 ‘어른’ 하나를 돌아볼 줄 아는 눈빛일 노릇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그냥 읽으면 그냥 못 알아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읽고 싶다면, 먼저 서울·쇳덩이·잿집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도 버려야 하고, 이름값(선생·원로·기성세대)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쥐고서 들숲바다 가운데 한 곳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멧골에 올라도 즐겁습니다. 풀벌레하고 새가 노래하는 곳에서 책을 펼칠 일입니다. 바다가 물결치고 바람이 일렁이는 곳에서 빗물수다를 들으면서 책을 넘길 일입니다.
집안일을 하던 손으로 읽을 《시정신과 유희정신》입니다. 비질에 걸레질을 하던 손으로, 천기저귀를 갈고 빨래하던 손으로,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던 손으로, 아이한테 자장자장 노래를 들려주는 눈망울로, 밤마다 별빛을 보고 낮마다 햇빛을 보는 눈짓으로,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몸으로, 껍데기를 버리고서 이웃이랑 어깨동무하는 매무새로, 천천히 읽고 새기면서 스스로 노래얼이랑 놀이넋을 밝힐 책 한 자락입니다. 같이 노래해요. 함께 놀아요. 나란히 이야기를 펴고, 새롭게 오늘을 써 봐요.
ㅅㄴㄹ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부유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큰 집을 지어 살려고 하는가? (9쪽)
아동문학이 아동을 위한 문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아동의 건전한 성장과 그들의 미래가 밝고 빛나는 세계가 되기를 염원하는 작가의 철학을 기반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회적 현실을 양심으로 파악하고 아동의 생활을 정직한 눈으로 보고 거기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24쪽)
그런 ‘인간적’인 것을 찾아내는 노력, 그런 인간적인 것이 짓밟혀 시들어지는 것을 애통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고 키워가는 작업, 이것이 교육이고 문학임을 확인하자. (66쪽)
아동이란 존재를 사회와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주인공으로서 작가의 온 인생관과 문학관으로 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좀더 절실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104쪽)
동심주의 동요가 가져온 해독은 아이들이 참된 시의 세계로 찾아가는 것을 완고하게 방해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다. 그것은 또 아이들의 정신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13쪽)
우리가 창조하는 아동문학, 그것은 미국의 것도 일본의 것도 중국의 것도 그밖의 어떤 나라의 것도 될 수 없는 바로 우리 한국의 것이다. 한국이란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주는 문학이요, 한국이란 특수한 풍토에서 피어난 문학이다. (136쪽)
아동문학의 간판을 내걸어 놓고는 아동을 멸시하고 아동과 상관없는 글을 쓰는 작가들도 문제지만, 얕은 손재주를 팔고 있는 상업주의의 유행도 문제고, 위선과 호언장담을 유일한 문단 처세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있어, 이들은 항시 정직한 작가의 발언을 봉쇄하기에 광분하고 이 땅의 아동과 민족의 앞날을 염원하는 양심적 작가들을 해치려고 하고 있다. (163쪽)
그토록 아이들을 사회와 절연된 세계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귀엽게만 바라보는 것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 있었던가. (178쪽)
아이들은 철저하게 생활인인 것이고, 생활 속에서만 시를 느끼고 시를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동이다. (224쪽)
결국 동시는 시인의 세계와 아동의 세계가 하나로 일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참되게 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26쪽)
신현득의 동시는 사물을 달콤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하는 순응주의로 하여 그 뜻한 바 교화적 의도조차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 미화의 작기 방법은 근본적으로 그가 동심주의적 아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본다. (252쪽)
글짓기 교육을 예술작품 창작교육으로 오해하고 있다. (334쪽)
우리 자신을 찾아 가지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역사적 과제요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이다. (35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