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 / 숲노래 우리말

곁말 96 싹눈쌀



  어릴 적에는 ‘나라쌀(정부미)’만 먹었습니다. 햅쌀(일반미)은 엄두도 못 내었습니다. 어머니는 설하고 한가위에만 햅쌀을 조금 샀습니다. 나라쌀은 여러 해를 묵힌 쌀이요, 바구미하고 바구미알이 으레 드글드글해서 해가 비추는 곳에 내놓은 뒤에 박박 문지르며 씻었고, 조리로 돌을 일어요. 나라쌀에는 바구미하고 돌이 많았습니다. 거의 씨눈까지 벗기면 흰쌀(백미)이요, 씨눈을 남기고 겨만 벗기면 누런쌀(현미)입니다. 우리 몸을 헤아리자면 씨눈이 있는 누런쌀을 먹을 노릇일 텐데, “이밥에 고기 먹고”란 옛말처럼 누런쌀보다는 흰쌀을 먹어야 좀 나아 보이는 살림이라고들 여겼어요. 요새는 누런쌀을 즐기려는 이웃님이 늘어납니다. 이러면서 싹눈을 틔운 누런쌀을 찾는 이웃님이 늘어요. 이 얼거리를 시골에서 헤아리면서 쌀 한 톨을 보듬는다면 나라살림이 아름길로 가리라 생각합니다. 겉만 반지르르한 살림이 아닌, 속에 씨눈이 있는 알찬 살림일 적에 누구나 든든하고 오붓해요. 싹이 터야 씨앗이요, 싹눈을 품어야 새해에 돋아나서 온누리를 푸르게 감쌉니다. 밥 한 그릇에 담는 숨빛도, 글 한 줄에 얹는 손빛도, 모두 새싹이요 잎싹이요 꽃싹이도록 가다듬고 돌봅니다.


ㅅㄴㄹ


싹눈쌀 (싹눈 + 쌀) : 싹·싹눈을 틔운 누런쌀. 싹·싹눈을 벗기지 않고 겉껍질만 벗긴 쌀. (= 씨눈쌀·싹누런쌀·싹눈누런쌀. ← 발아현미)


씨눈쌀 (씨눈 + 쌀) : 씨눈을 틔운 누런쌀. 씨눈을 벗기지 않고 겉껍질만 벗긴 쌀. (= 싹눈쌀·싹누런쌀·싹눈누런쌀. ← 발아현미)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