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2.7.

수다꽃, 내멋대로 33 사읽고 느낌글



  숲노래 씨가 나고자란 인천은 이제 책숲(도서관)이 꽤 늘었지만, 숲노래 씨가 어린이였을 적에는 ‘어린이책’을 건사한 데는 없다시피 했고, 열 살이던 1984년에 동무들하고 율목도서관에 찾아간 적이 있으나 “애들이 여기 왜 와! 얼른 나가! 에비!” 같은 소리를 들으며 쫓겨났다. 요새 이렇게 어린이를 내쫓는 책숲은 없을 테지만, 예전에는 이랬다. 아는가? 떠올릴 수 있는가?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1988∼1993년에도 인천 책숲은 ‘독서실’일 뿐, 책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다. 퀴퀴하고 낡고 고리타분한 책만 있는데, 빌리기도 어렵고, 빌릴 만한 책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알 수 있는가? 믿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대한서림〉이나 〈동인서관〉처럼 인천에서 내로라하던 큰 새책집도 잘난책(베스트셀러)을 바탕으로 꽂을 뿐, 뭔가 깊고 넓게 책을 살피는 책터가 아니었고, 책을 안 사고 5분 넘게 책시렁을 돌면서 읽을라 치면 눈치가 보이거나 쫓겨났다. 예나 이제나 책손(책을 읽는 손)을 안 내쫓는 곳은 헌책집이다. 무엇보다 헌책집은 잘난책보다 오래책을 건사하는 책터였고, 혼책(비매품)을 널리 만날 뿐 아니라, 이웃책(외국책)까지 만나서 배우는 터전 노릇을 톡톡히 했다. 책이 책다이 있지 않고, 책숲도 책숲답지 않으며, 헌책집에서 조용히 책빛을 헤아리면서 배운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책은 빌려읽을 수 없고, 사읽고 스스로 건사해야 한다”였다. 1991년부터 책느낌글을 혼자 써서 둘레에 나눴다. 주머니를 털어 장만한 책을 읽고서 스스럼없이 느낀 바를 밝혔다. 글님이나 펴냄터 이름을 따져서 느낌글을 쓰지 않았다. 줄거리·이야기·속내·밑뜻을 헤아리며 느낌글을 쓸 뿐이다. 1999년 여름에 보리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서도 ‘스스로 일하는 보리출판사 책’을 놓고서 바지런히 느낌글을 썼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펴낸 책을 사람들한테 팔고 새책집에 넣고 책숲에 보내는 일을 맡았지만, ‘스스로 보기에 떨어지는 책’은 어느 대목이 어떻게 왜 떨어지는가를 낱낱이 밝히면서 팔거나 건네었다. ‘스스로 보기에 아름다운 책’은 어느 대목이 어떻게 왜 아름다운가를 찬찬히 짚으면서 팔거나 드렸다. 몸담은 일터에서 냈기에 “별점 만점”을 매긴다면 거짓꾼이다. 아는 분이 쓴 책이라서 “별점 만점”을 붙인다면 미친놈이다. 다만, 숲노래 씨가 보는 눈썰미가 ‘옳다’고 여길 수 없다. 숲노래 씨는 늘 “어린이 눈높이 + 시골내기 눈망울 + 들숲바다 눈길 + 해바람비 눈빛 + 풀벌레·벌나비·숲짐승 삶길”에다가 “가난하고 낮은 자리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 + 부릉이(자가용) 없이 걷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을 바탕으로 책을 살펴서 느낌글을 쓴다. 누가 거저로 주는 책이기에 “별점 만점”을 붙인다면 장사꾼이다. 펴냄터에서 돌리는 ‘보도자료’로 받았기에 좋게좋게 잘 써 주려 한다면 속임짓이다. 지은이와 엮은이가 땀흘려 내놓는 책이되, 지은이와 엮은이 땀값만 높일 수 없는 책이다. 모름지기 모든 책은 숲에서 왔고, 숲을 흔들거나 가꾸는 숨결로 잇는다. 눈먼 돈벌이를 꾀하는 책이 있고, 얼뜬 이름팔이에 얽매인 책이 있고, 참길을 감추거나 누르면서 거짓길(껍데기)을 부풀려서 사람들을 길들이거나 속이는 책이 있다. 솎거나 가릴 책은 솎거나 가린다. ‘숲노래 씨가 쓴 글을 여미어 펴내는 곳’에서 나온 다른 책도 ‘숲노래 씨 책을 펴내 주었기에 마냥 좋게 보는 느낌글’을 쓸 까닭이 없다. 누구나 매한가지이다. 책을 사읽거나 빌려읽거나 받아읽고서 느낌글을 쓸 적에는 숨김없이 느낌을 밝혀야 서로 이바지한다. 지은이와 펴낸이는 ‘팔 뜻’뿐 아니라 ‘배울 뜻’이 있어야 지은이와 펴낸이 아닐까? 모든 책이 “별점 만점”이라면 책을 낼 까닭도 읽을 까닭도 없다. 새롭게 들려주고 새롭게 배우면서 어깨동무하는 길 가운데 책이 하나 조그맣게 있을 뿐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