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濟州島 - 1935~1965 일본 문화인류학자의 30년에 걸친 제주도 보고서
이즈미 세이치 지음, 김종철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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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책읽기 2023.1.31.

숲책 읽기 188


《제주도》

 이즈미 세이치

 김종철 옮김

 여름언덕

 2014.5.25.



  《제주도 1935∼1965》(이즈미 세이치/김종철 옮김, 여름언덕, 2014)는 일본이웃이 우리나라 제주섬을 살핀 발자취를 서른 해를 틈을 두고서 갈무리하고서 여민 꾸러미입니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우리 삶자취를 차곡차곡 여미는 사람이 부쩍 늘었으나, 아직도 우리 삶길보다는 이웃나라 삶길에 더 마음을 쏟는 얼개입니다. 지난날에도 우리 살림새를 우리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손으로 품는 일이 드물었고, 오늘날에도 우리 살림빛을 우리 숨결로 읽고 헤아리면서 우리 넋으로 다독이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늘어납니다.


  이웃나라에서 먼저 세우거나 마련한 틀에 맞추면, 이모저모 읽거나 헤아리기에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나라 틀(이론·학문)은 이웃나라 삶·살림·사람을 살펴서 세운 틀이에요. 모든 나라는 다르기에 모든 나라는 저마다 저희 틀을 차근차근 세울 노릇이에요.


  지난날에는 총칼을 앞세운 무리가 억지로 짓밟았기에 ‘우리 눈·넋·숨·말글’을 스스로 뒷전으로 내몰았다면, 오늘날에는 ‘우리 눈·넋·숨·말글’을 뜬금없이 ‘민족주의·보수·차별’로 내몰곤 하더군요. 그러나 인도는 인도 눈빛으로 읽고 보아야 인도를 알 수 있고, 네팔은 네팔 넋으로 읽고 보아야 네팔을 알 수 있어요. 일본은 일본 숨길로 읽고 보아야 일본을 알 테며, 이 나라는 한겨레 말글로 읽고 보아야 비로소 이 나라 이 땅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사람 말글하고 삶결하고 살림새를 안 살피면서 제주를 알 턱이 없습니다. 우리말·우리글을 안 살피면서 우리 옛자취하고 오늘살림을 알 턱이 없어요. 이런 여러 가지를 헤아려 보면, 《제주도 1935∼1965》는 이웃 일본사람이 한겨레하고 제주섬을 찬찬히 사랑하려는 마음을 기울여서 여민 값진 꾸러미라고 여길 만합니다.


  제주에서 나고자랐기에 제주를 알지 않습니다. 한겨레(한국)란 이름을 달고서 살아가기에 한겨레를 알지 않아요. 말 한 마디를 차근차근 돌아보고, 살림살이 한 가지를 찬찬히 보살필 적에 비로소 우리 속빛을 읽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사랑(나사랑)’하고 등져요.


  작은 낱말 ‘우리’는 ‘너 + 나(나 + 너)’입니다. 혼자를 제대로 느끼고 바라보기에 ‘우리’입니다. 둘레에 다른 사람이 없어도 ‘나 + 나무’나 ‘나 + 새’이기에 ‘우리’입니다. ‘나 + 흙’이나 ‘나 + 풀벌레’나 ‘나 + 구름’이나 ‘나 + 바람’이나 ‘나 + 바다’이기에 ‘우리’예요.


  그저 뭉뚱그리는 자리에서도 ‘우리’를 쓰기에 “우리에 가둔다”도 있으나, 이런 말씨는 ‘말이 잘못’이 아닌, ‘말을 다루는 마음이 일그러진 모습’일 뿐입니다. 마음을 슬기롭게 다스리고 어질게 펴는 말로 생각을 심어야 비로소 한겨레도 제주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우리 스스로 태어나거나 살아가는 자리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살림을 짓습니다.


ㅅㄴㄹ


밭갈이가 바쁜 계절이 끝나면 섬 날씨는 맑아 바다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올라오고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다. 그리하여 비 많은 달로 접어든다. 밭에는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다. 칠월절 전후는 이른바 ‘검질매기(김매기)’가 바쁜 철이다. (110쪽)


그들은 사락눈 또는 방울눈이 내린 직후엔 사냥감을 사로잡긴 쉬우나 급경사면에서는 ‘어름시러짐(눈사태)’이 많으니 깊은 골 바닥엔 들어가지 말라든가 엄의 사면은 잘 미끄러진다든가, 밑에 물이 흐르고 있는 엄믜 눈다리는 위험하니 피하라 …… (117쪽)


일본 해녀는 잠수 때 속치마를 입는데 비해 제주도 잠녀는 이와는 다른, 더구나 한복과도 계통이 다른 마름질인 소중의를 입는다는 것, 어획 대상물은 일본에서는 식용의 패류, 해조류가 주인데 비해 섬의 잠녀는 우선 밭거름으로서의 듬북이 죽이고 식용 해조류와 패류가 버금이라는 점이다. (147쪽)


(1933년) 일본 재주 한국인에 대해서 보면 전혀 그 양상을 달리해 특히 오사카·도쿄 등 대도시 거주자의 반수 가까이가 제주도 출신자다. (265쪽)


여자의 86.9퍼센트는 한복을 가지고 있는 반면 남자는 84.2퍼센트가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한복을 소유한 남자들 중 8인은 한 사람당 한 벌씩, 나머지 2인만이 각각 세 벌, 다섯 벌을 소유하고 있다. (292쪽)


(1944년) 인구 25만 명 정도인 섬에 전체 인구의 거의 반수에 해당하는 일본군이 들어와서 전도의 요새화를 위해 해안에서 한라산 기슭에 걸쳐 토치카를 만들고 도로를 고치고 혹은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진지에는 무기가 모여 쌓여갔다. 그것은 1년도 안 되는 기간이었으나, 뒤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섬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 (3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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