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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 변화의 시대 조선 후기 ㅣ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이광희 지음, 장선환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12월
평점 :
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7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손주현·이광희 글
장선환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17.12.13.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던 무렵 저잣거리하고 나라살림을 엮어서 들려주려는 얼거리입니다. 고려가 어떤 나라였는지 얼핏 엿보려 하지만, 내내 조선이 새롭고 더 살기 좋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이나 오늘날 우리나라 어느 쪽이 더 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라이름이 바뀌고, 나라지기가 바뀌고, 벼슬꾼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지기는 으레 그들 스스로 가장 낫거나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나라지기나 벼슬꾼이라는 자리에 서면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안 섞입니다. 아니, 나라지기나 벼슬꾼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바쁘다든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서 성가시다든지 이러저러해서 ‘사람들 사이’에 아예 없는 나라지기나 벼슬꾼이 많아요. 붓바치(작가·예술가)도 매한가지요, 이름꾼(연예인·유명인·스포츠 스타)도 ‘사람들 사이’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없는 나라지기·벼슬꾼’이 나라틀을 짜고, ‘사람들이 맡을 몫이나 낼 낛(세금)’을 따지고 갈무리하고 거두어서 씁니다. 나라지기·벼슬꾼은 나라돈(예산)을 써서 나라일(행정)을 한다고들 하는데, 정작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않는 그들은 ‘사람들 살림새’를 모르는 터라, 나라돈을 함부로 쓰거나 빼돌려요. 고려이든 조선이든 오늘날이든 똑같습니다. 남녘·북녘도 똑같아요. 우두머리 자리에 있건 벼슬을 거머쥐었든 그들은 똑같이 ‘사람들 사이’가 아닌 ‘끼리끼리 담벼락을 쌓아서 못 넘보’도록 틀어막고 채찍을 휘두르지요.
어린이한테 우리 옛자취를 들려주는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인데, 조선 무렵에 나리(양반)가 흙지기(농민)를 어떻게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업신여기거나 짓밟거나 가로채거나 우려먹거나 죽이거나 놀렸는지를 조금 더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 대목을 풀어내려고 했다면, 고려뿐 아니라 조선도 허울스러운 나라틀이라는 대목을 밝혔으리라 봅니다. 고려는 신라보다 낫지 않았고, 조선은 고려보다 낫지 않았으며, 오늘날 남북녘은 조선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매한가지인 사슬이자 굴레입니다.
우리가 돌아볼 옛자취하고 오늘자취는 ‘우두머리가 세운 나라틀’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손수 짓는 보금자리 살림새’여야 슬기롭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은 이제 걷어치우고, ‘글로 안 남았으나 몸마음에 남은 수수한 사람들 살림빛’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하고 어른책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요즘 청의 간섭이 덜해져싸고 해도 도망친 포로 문제만은 길길이 뛰며 돌려보내라고 하니 조정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오. 작년에 단체로 도망친 포로들을 모두 붙잡아 돌려보내지 않으면 또 쳐들어오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우린들 어쩌겠소.” (35쪽)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가 된 농민은 땅을 사들이며 떵떵거리며 산다. 반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농민도 생겼다. 예전에는 죽으나 사나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데 말이다. 이들은 농사일을 그만두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품을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가 되었다. (77쪽)
이처럼 돈 주고 양반이 된 상민과 노비들이 많아지며 한때 조선 인구 절반을 차지하던 노비 수는 확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반의 권위는 툭 떨어졌다. 양반이라도 돈 없고 벼슬 얻지 못하면 양반 대우 못 받는다. (143쪽)
* 아쉬운 말씨 하나 (아쉬운 말씨는 많으나 하나만 골라서 손질해 놓는다)
그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장 중앙통을 능숙하게 걸어가는 한 조선 소년이 있다
→ 그 고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저잣길을 슬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 그 고을 저잣길 한가운데를 요리조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 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