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이 힘찬문고 10
임길택 글, 유진희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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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8


《수경이》

 임길택

 우리교육

 1999.12.15.



  《수경이》(임길택, 우리교육, 1999)를 가만히 되읽었습니다. 199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금조금 읽히는구나 싶은데, 이 작은 이야기꾸러미에 흐르는 시골빛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웃도 조금조금 늘려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멧골마을에서 멧골아이 곁에 서면서, 멧골어른으로 같이 살면서, 살림빛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은 《수경이》입니다. 이 책이 나오던 무렵에도, 임길택 님이 글을 쓰던 무렵에도, 또 그때부터 스무 해가 훌쩍 지난 때에도, 시골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면서 시골빛을 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나날이 줄면서 사그라드는 시골빛이되, 서울을 떠나 시골에 깃들면서 시골노래를 글로 여미어 책을 내는 분은 조금조금 늘어납니다. 다만, 시골에서 조금 더 느긋이 풀꽃나무를 돌아보고 들숲바다를 품어 보고서 천천히 시골노래를 여미면 한결 나을 텐데, 다들 너무 서둘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고 느껴요.


  시골사람이 서울로 옮겨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이나 책으로 여민다고 생각해 봐요. 서울에서 한두 해 살아 보고서 서울살이를 글이나 책으로 여미면 얼마나 엉성하거나 서툴까요? 적어도 서울살이 열 해쯤 하고서 글이나 책으로 여미어야 ‘서울맛’을 조금 담아낼 만합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옮긴 사람들도 매한가지예요. 적어도 ‘철갈이’라고 하는 ‘열 해’를 묵혀 보아야 이야기가 무르익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열 해면 들숲이 바뀐다(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얘기합니다.


  멧골내기로 살아가는 꿈을 키우다가 흙으로 돌아간 임길택 님은 누구보다 시골아이랑 시골어른을 바라보면서 글을 여미었고, 시골아이랑 시골어른하고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려는 마음을 키울 서울아이랑 서울어른을 그리면서 글을 써냈다고 느껴요.


  시골에서 짓는 시골빛이든, 서울에서 일구는 서울빛이든, 먼저 우리 스스로 살림빛으로 나아가는 사랑길일 적에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빛’이란 사랑으로 녹여서 새롭게 가꾸려는 숨결입니다. 이와 달리, 서둘러 선보이면서 팔아치우려 하거나 자랑하려 들거나 내세우려고 하는 자랑길로 간다면 ‘빚’이지요. 텅 빈 수레예요. 빈수레가 시끄럽다고 하듯, 무르익히지 않고서 내놓는 모든 글은 겉으로만 시끌벅적합니다.


  하느님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마음에 빛나는 사랑이 흐르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겨레 이름이 ‘한겨레’인 뜻을 돌아봐요. ‘한 = 하늘 = 하나 = 큰 = 우리 = 해 = 오늘’인 얼거리입니다. 남(서울내기)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논밭을 지을 수 없어요. 스스로(시골내기) 오늘 하루를 사랑하려고 논밭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수경이는 들숲을 헤치면서 들꽃을 그러모아 소한테 꽃걸이를 씌워 줍니다. 조그맣게 피어나는 사랑꽃을 속삭이는 작은 이야기꽃인 《수경이》입니다.


ㅅㄴㄹ


“우리가 그렇게 농사짓는다고 도시놈들이 알아주기나 할 줄 아는가?” “그들이 알아주라고 농사를 지어선 안 되지요. 하느님이 주신 우리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농사를 지어야지요.” “하느님 같은 소리 말게.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여. 하느님이 있었다면 이날 이때까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걸세.” (28쪽)


책을 떠듬떠듬 읽고, 가지고 온 사탕을 동무들과 나누어 먹으며 금주는 오학년을 마치고 육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금주는 ‘하느님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 / 어머니랑 아버지랑 싸우실 때 / 나는 하느님한테 /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 싸우지 못하게 말려 주세요 하고 / 말씀드렸다.” (94쪽)


수경이는 잡목을 타고 오르던 댕댕이덩굴을 뜯어 둥그렇게 만들었다. 머루알 같은 댕댕이덩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 찔레 열매도 꺾어서 꽂고 억새꽃도 끼워 꽃다발을 만들었다. 노란 마타리꽃은 한쪽에 따로 꺾어 놓았다. 소 목덜미를 긁어 주면서 수경이는 그 꽃다발을 소뿔에다 씌워 주었다. 소는 꼬마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라도 하듯이 그 꽃다발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수경이가 마지막으로 마타리꽃을 꽂으니 소는 금방 들판의 왕이 되었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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