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1.24.

노래책시렁 271


《소금꽃·안개꽃》

 정인화

 일빛

 1991.10.30.



  들빛물결이 한창 일어날 무렵, 숱한 노래(시)는 “분노하고 투쟁하라!” 같은 목소리를 내놓았습니다. 그무렵 ‘운동권’이 흔히 쓰는 ‘분노·투쟁’ 같은 일본 한자말을 ‘불길·싸움’으로 고쳐쓰면 안 되겠느냐고 ‘운동권’인 분들을 만날 적마다 얘기해 보았는데, 우리말 ‘불길·싸움’은 멋대가리도 없고 힘알이도 없다면서, ‘분노·투쟁’을 꼭 써야 한다고들 대꾸했습니다. ‘제국주의’를 거스른다고 외치지만 정작 ‘군사제국주의 일본이 흩뿌리거나 심은 한자말’을 고스란히 쓴다면, 우리 스스로 들빛으로 설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분들은 ‘들꽃·들풀’ 같은 우리말을 이따금 쓰지만, 이보다는 ‘민(民)’이란 한자를 즐깁니다. 한자 ‘민’은 ‘눈먼 종(눈을 빼앗긴 노예)’을 가리킵니다. 이와 달리 우리말 ‘들꽃·들풀’은 온누리를 푸르게 덮는 숨결이에요. 《소금꽃·안개꽃》은 “투쟁과 사랑 속에 피어난 해방의 이야기”를 내세우는 노래책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싸움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싸움이 없어요. 사랑은 모든 싸움을 녹이거든요. 곰곰이 보면, 그분들은 ‘짝맺기’를 외쳤을 뿐, ‘사랑’을 노래한 적이 없습니다. 불타올라서(분노하며) 때려잡을 미운놈(적)을 찾기만 했더군요.


ㅅㄴㄹ


미소 띤 얼굴로 다시 / 그 전장으로 돌아갔는데 / 아, 눈물이 아닙니다 / 서러움이 아닙니다 / 노동해방의 뿌리를 흥건히 적시는 / 물줄기입니다 / 이젠 가슴 벅찬 기쁨입니다 / 진정 솟아나는 환희입니다 (눈물이 아닙니다/23쪽)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 증오는 반도를 뒤흔드는데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수천 수만의 만장을 들고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아― / 답답하여라 / 캄캄하여라 / 막막하여라 (우리더러 어디로 가잔 말인가?/1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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