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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평점 :
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날개는 늘 네 마음에 있어
《페르세폴리스 1》
마르잔 사트라피
김대중 옮김
새만화책
2005.10.5.
《페르세폴리스 1》(마르잔 사트라피/최주현 옮김, 새만화책, 2005)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한글판이 처음 나온 2005년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바야흐로 낡은 굴레가 하나둘 걷히면서 뭇목소리가 조물조물 터져나올 즈음이라 여길 만합니다. 들불(민주화운동)은 1980∼1990년에 그야말로 온나라를 덮었습니다만, 들불은 일어나더라도 다 다른 목소리를 다 다르게 받아들일 만한 터전은 아니었어요. 들불이 번지고서 열 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온갖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은 마당이 깨어났습니다.
이란에서 순이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길이 얼마나 갑갑한가를 드러내는 《페르세폴리스 1》입니다. 그린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낡고 고약하고 케케묵은 이란을 새롭게 바꾸어 내려고 온힘을 쏟았지 싶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떠나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사랑하기에, 갖은 굴레하고 몽둥이에도 굽히지 않으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그립니다.
그린이는 어버이 품에서 걱정없이 자라다가 이웃나라로 떠납니다. 굴레(히잡)를 씌우는 곳에서는 배움길이 없이 그저 굴레만 판치는 터라, 목소리뿐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살림도 없다고 여길 만했어요. 그런데 날갯짓(자유)을 그리며 이웃나라로 떠난 아이는 이웃나라에서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요. 곰곰이 보면 ‘혼자 빠져나왔다’는 마음에 스스로 멍울을 새긴 셈입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한 이란사람’이 떠올라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늙어가는’ 하루였다고 할 만합니다.
새롭게 살아가고픈 마음이었으나, 몽둥이 굴레에서 벗어나자 외려 고리타분하게 늙어가고 만 셈이랄까요. 2005년에 처음 읽을 무렵에도 2023년에 되읽는 오늘에도,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작은이웃’을 그닥 안 만나거나 안 눈여겨보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참나(참다운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뜰 노릇인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겉나(겉몸을 입은 나)’만 쳐다보느라 참나도 이웃도 아닌 수렁길을 헤맨 나날이었네 싶어요.
이런 대목은 그린이가 뒤이어 내놓은 《자두 치킨》이나 《바느질 수다》에서 또렷이 느낄 만합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날갯길을 찾아나서고 새롭게 짓는 하루가 아닌, 스스로 굴레에 사로잡혀서 눈도 마음도 닫는 노닥질에 빠져요. 이란이라는 나라를 고리타분한 바보짓으로 억누르는 고약한 웃사내하고 비슷한 매무새라고 여길 만합니다.
날개는 늘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날개가 있는 줄 스스로 안 쳐다보기에 날개가 없다고 여기고 맙니다. 그린이 할머니가 얼마나 어질고 슬기로웠는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꽁무니를 빼야 할 적에는 뺄 만하되, 옆에 있는 이웃하고 동무를 바라보지 않고서 자꾸 달아나기만 한다면,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던 마을 이웃하고 동무를 돌아보지 않고서 ‘프랑스사람처럼’ 살아간다면, 그 길이 나쁠 까닭은 없되, 늘 그린이 스스로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채 헤매는 모습일밖에 없습니다.
13살이면 달아날 수조차 없는 어린 돌이는 나라(이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에 갇혀 싸울아비(군인)가 되어야 하는데, 이 가녀린 돌이한테 날갯길하고 참길을 들려주거나 보여줄 이웃이나 동무가 모두 달아나고 없다면, 이란은 앞으로도 바보스런 굴레에 그저 허덕이리라 봅니다.
ㅅㄴㄹ
부모님은 날마다 데모에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진다.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들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하루 종일 행진과 돌 던지기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부모님은 온몸이 쑤신다고 했고, 머리까지 아파했다. (24쪽)
“너네 아빠는 살인자지만, 그게 네 잘못은 아니지. 그래서 널 용서하기로 했어.” “아빠는 살인자가 아니야! 아빤 공산주의자를 죽인 거야.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라구.” (52쪽)
대학은 사라졌다. 난 화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마리 퀴리처럼 되고 싶었다. 난 교육받은 자유로운 여성이 되고 싶었다. 만약 지식을 추구하는 게 암을 유발한대도, 차라리 그게 나아 보였다. (79쪽)
“두 놈이, 그 수염 난 두 놈이! 그 근본주의자 개자식들이, 개자식들, 개자식들, 놈들이.” “진정해, 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놈들이 날 욕했어. 나 같은 여자는 벽에 대 놓고 강간하고 쓰레기장에 던져 버려야 한다고. 그리고 싶지 않으면, 베일을 써야 한다고.” (80쪽)
엄청나게 긴 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있었다. 특히 어린 남자애들이. 미래의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자는 13살 이후엔 외국에 나갈 수 없었다. (157쪽)
#Persepolis #MarjaneSatrapi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