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지음 / 깨소금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3.1.13.

인문책시렁 262


《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깨소금

 2022.10.24.



  《여름한 국어학원》(변진한, 깨소금, 2022)을 읽었습니다. 배우고 일하고 나누는 하루를 누린 발자국을 차곡차곡 들려줍니다. 배웠기에 들려줄 수 있고, 들려주면서 살림을 가꾸는 일을 찾을 수 있고, 살림을 가꾸면서 어느새 스스럼없이 나누는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돈이 잘되는 일감을 거머쥐려 달려들면서 이름값을 높이는 나날인데, 차곡차곡 쌓은 돈은 어디에서 누구한테 이바지할까요? 우리나라 배움터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돈이란 무엇인가?”나 “돈을 어떻게 쓰기에 즐겁고 아름다울까?”를 하나도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지 않는가요?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배움터는 ‘사랑’부터 안 가르치고 ‘숲’을 못 가르치며 ‘말’을 안 가르치고 ‘글’을 못 가르칩니다. 이름으로는 ‘사랑·숲’이나 ‘말·글’을 가르치는 시늉이지만, 껍데기만 슥 훑거나 건드리다가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사람으로서 살림을 짓는 어진 빛살인 하루일 적에 사랑입니다. 숱한 숨결을 수수하게 품을 줄 아는 풀꽃나무이기에 숲입니다. 마음을 그려서 생각을 씨앗으로 담기에 말입니다. 소리로 터져나오는 생각을 마음에뿐 아니라 눈으로도 보면서 나누려고 그리기에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부터 제대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우리 첫 낱말책은 믿음길(종교)을 퍼뜨리려던 이웃나라에서 엮었고, 이다음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던 일본 글바치하고 일본바라기(친일파)가 엮었습니다. 이다음으로 우리 손으로 엮으려다가 한겨레싸움(한국전쟁)에 휩쓸렸고, 겨우 숨을 돌린다 싶을 무렵에는 서슬퍼런 총칼(군사독재)이 다시 번득였어요. 총칼을 몰아낸다 싶더니 어느새 이쪽저쪽(좌파·우파) 모두 돈바라기로 휩쓸렸고, 이윽고 누리바다(인터넷세상)로 달리면서, 아직도 우리말꽃(국어사전)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판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글이 여태 우리말·우리글답지 않다면, ‘우리말글’이 아닌 ‘국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인 이름으로 뭔가 가르치는 얼거리가 제대로 선 적이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쳇바퀴이자 수렁이자 굴레일 테고, 배움수렁(입시지옥)입니다. 즐겁게 펴고 기쁘게 나누며 아름다이 꽃피우는 말글하고 동떨어진 ‘국어’일 텐데, ‘말글 아닌 국어’에 무슨 마음을 어떤 생각으로 심을 수 있을까요?


  이쪽을 보아도 갑갑하고 저쪽을 보아도 답답한 나라이지만, 사랑으로 마주하는 짝꿍이 있고, 두 사람이 새롭게 맺는 사랑으로 만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서둘러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서둘러 자라야 하지 않거든요. 차근차근 여미어 찬찬히 누리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는 별빛처럼 빛나고 햇빛처럼 따스할 만합니다.


ㅅㄴㄹ


남들보다 군대를 늦게 다녀와서 두 해 임용을 준비했지만 떨어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에, 몇십 대 일이었던 경쟁률을 탓할 수는 없다. 어쩌다 보니 그 시절 시험공부를 밑천 삼아 학원가로 나와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12년 넘게 학원 밥을 먹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안정과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부딪힐 때마다 임용을 일찍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10쪽)


“그건 스무 살의 벚꽃이야. 열아홉의 벚꽃은 열아홉에만 피는 거야. 내년에 올해의 벚꽃을 볼 수는 없어. 단, 엄마께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해도 항의전화 한 번 받은 일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벚꽃놀이를 가지 않았거나 엄마에게 나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4쪽)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일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일어난 일”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아닐까. (41쪽)


더는 학원을 운영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연애시대〉를 보며 생각했다. 처음 시작할 무렵, 육 년 후 내가 이런 마음일 것을 알았다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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