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메뚜기 이웃 (2022.8.6.)
― 대전 〈우분투북스〉
집안살림은 집안을 돌보아야 스스로 익힙니다. 책집살림은 책집을 꾸려 보아야 스스로 배웁니다. 석 달, 여섯 달, 한 해, 세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쉰 해, 이처럼 차근차근 나아가는 살림길입니다. 첫 석 달을 지내면 다음 석 달을 버티며 새롭게 배우고, 이다음에는 한 해를 살아내는 길을 바라보고는, 세 해를 일구는 숨결을 헤아리다가, 다섯 해를 거쳐 열 해를 이루는 살림꽃을 피울 만하다지요. 열 해를 살아내면 스무 해를 고즈넉이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서른 해 무렵 고빗사위에 이르고, 이 고개를 넘으면 쉰 해를 부드러이 살아내면서 사랑이 무르익어 열매를 맺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집살림 이야기는 숱한 책집지기가 이야기로 매무새로 책시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버이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살림빛을 가꾸듯, 작은 책벌레는 온나라 마을책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책살림길하고 맞닿는 온살림빛’을 시나브로 배웠습니다.
우리말은 ‘빛’하고 ‘빛깔’입니다. 한자말 ‘색(色)’을 써도 나쁘지 않지만, ‘빛’하고 ‘빛깔’이 뭐가 다른지, 또 ‘빛살’하고 ‘빛발’하고 ‘빛줄기’는 무엇인지, ‘빛’에 차근차근 여러 말을 붙여 보면 생각을 넓힐 만합니다.
대전 〈우분투북스〉를 찾아갑니다. 알을 잔뜩 품어 곧 낳을 무렵인데 그만 사람하고 자전거한테 밟혀서 죽은 안쓰러운 메뚜기를 봅니다. 어쩌다 이렇게 밟히고 또 밟혔을까요. 새로 깨어나지 못 한 메뚜기알은 어미 배에 깃든 채 길바닥에 아주 납작하게 으스러졌습니다.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고 지나갔습니다. 한참 가다가 돌아섰습니다. 납작하게 이 땅을 떠난 메뚜기 주검 곁에 쪼그려앉습니다. “몸을 내려놓으면서 아픔은 사라졌어. 비록 새끼 메뚜기가 태어나지는 못 했지만, 네 사랑은 이 고을에 남는단다. 부디 너그럽고 넉넉하게 바람빛으로 날아다니렴.” 하고 속삭이고는 풀밭으로 메뚜기 주검을 옮깁니다.
저마다 즐겁게 온마음으로 하루를 짓는 손길로 아이 곁에 서기에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으로서 노래하는 하루이기에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곁에 달라붙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걷다가 읽다가 쓰다가 밥짓다가 빨래하다가 잠들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른인가? 나는 어른으로 가는 길인가?’ 〈우분투북스〉에서 땀을 식히면서 책을 고릅니다. 고른 책을 셈합니다. 셈한 책을 등짐에 담습니다. 서울로 갈 칙폭이를 타러 부지런히 달립니다.
ㅅㄴㄹ
《월간 옥이네 61호》(박누리 엮음, 월간 옥이네, 2022.7.5.)
《우리는 군겐도에 삽니다》(마츠바 토미/김민정 옮김, 단추, 2019.3.25.)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이연희, 봄날의책, 2022.3.21.첫/2022.4.21.2벌)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제임스 베리 글·안나 쿠냐 그림/김지은 옮김, 나는별, 2021.11.27.)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