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2023.1.4.

말꽃삶 5 첫밗 첫꽃 첫씨 첫발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히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하더라도 ‘글’이라 할 만한 글을 못 여미게 마련입니다.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울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우지 않는다면 제 뜻이며 생각이며 마음을 알맞게 펴는 길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글·한글은 모든 소리를 담습니다. 소릿값(발음기호)으로 삼아도 넉넉할 만큼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웃글(이웃나라 글)도 그 나라 사람들 나름대로 온갖 소리를 담아요. 모든 글은 그 글을 쓰는 사람들 나름대로 그들이 듣고 받아들이는 소릿결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커버

 カバ-


  영어 ‘cover’를 ‘커버’로 적으면 ‘한글’로 적는 셈이지만, ‘한말·우리말’은 아닙니다. 이웃나라가 ‘カバ-’로 적는다고 하더라도 ‘カバ-’가 ‘일본말’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그저 영어 ‘cover’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글일 뿐입니다.


 겉·껍데기

 마개·덮개·뚜껑·가리개·씌우개

 막다·덮다·가리다·씌우다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적에는 ‘소릿글’일 뿐, 아직 우리글도 한글도 아니라고 여길 노릇입니다. 뜻이며 쓰임새를 아이부터 한어버이까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리면서 새길 수 있도록 풀어내거나 옮겨야 비로소 ‘우리글·한글’일 뿐 아니라 ‘우리말·한말’입니다.


시조(市朝) : 시정(市井)과 조정(朝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조(始祖) : 1.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 비조 2. 어떤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처음으로 연 사람 3. 나중 것의 바탕이 된 맨 처음의 것

시조(始釣) : 얼음이 녹은 뒤에 처음으로 하는 낚시질

시조(施助) : [불교]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 시주

시조(時鳥) : 1. [동물] 철에 따라서 우는 새 ≒ 시금 2. [동물] 두견과의 새 = 두견 3. [동물] 올빼밋과의 여름새 = 소쩍새

시조(時潮) : 시대적인 사조나 조류

시조(時調) : 1. [문학] 고려 말기부터 발달하여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2. [음악] 조선 시대에 확립된 3장 형식의 정형시에 반주 없이 일정한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 = 시절가

시조(翅鳥) :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시조(視朝) : 조정에 나아가 정사를 봄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뒤적이면 ‘시조’를 모두 아홉 가지 싣습니다. ‘시조’ 갈래에는 없으나 ‘시조새(始祖-)’도 있습니다. 한자로 적는 열 가지 낱말인 ‘시조’일 텐데, 한자를 소릿값으로 적은 ‘시조’ 열 가지는 우리말·한말일까요? 우리말·한말로 삼아도 될까요?


  곰곰이 보면, ‘市朝·始釣·施助·時鳥·時潮·翅鳥·視朝’ 일곱 가지는 우리나라에서 쓸 일이 없고, 쓸 까닭이 없습니다. 쓰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이런 낡은 ‘중국글’을 누가 쓸까요? 예전에 중국을 섬기던 임금·벼슬아치·글바치는 이런 고리타분한 중국글을 썼을 테지만, 오늘날에는 쓸 일도 까닭도 없을 뿐 아니라, 낱말책(국어사전)에서 털어낼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이 아닌데 왜 올림말로 실을까요?


  지난날 중국글인 한자로 글을 짓던 이들은 ‘時調’를 읊었습니다. 요새도 ‘시조’를 읊거나 짓는 분이 드문드문 있으나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예스러운 글이라서 사라진다기보다는, 우리 삶으로 녹여내거나 풀어내는 길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노래·노랫가락·노래꽃

 글·글월·글자락

 글가락·가락글


  우리나라는 아직 ‘시(詩)’라는 중국글을 그냥 쓰고, ‘시가(詩歌)·시문(詩文)·시구(詩句)’에 ‘시조(時調)’에다가, ‘운문(韻文)’까지 씁니다만, 우리말·한말로 바라보자면 ‘노래’이거나 ‘글’입니다.


  처음은 노래하고 글로 바라보고 풀어낼 노릇입니다. 이다음에는 ‘노랫가락’이나 ‘노래꽃’처럼 새롭게 살펴볼 수 있고, ‘글월·글자락’처럼 살을 보탤 만합니다. 그리고 ‘글가락’이나 ‘가락글’처럼 헤아려도 어울립니다.


  중국글을 옮기는 소릿값으로만 적는다면 우리글·한글은 부질없거나 덧없습니다.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담는 이야기로 여기면서 우리말·한말로 피어나자면,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돌아보면서 새말로 여밀 줄 알 노릇입니다.


 옛새·옛날새

 오래새·오랜새


  ‘시조새(始祖-)’는 오늘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먼 옛날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입니다. 그러니 ‘옛새’나 ‘옛날새’라 하면 되어요. 요새는 ‘오래가게’나 ‘오래마을’처럼 우리말 ‘오래-’를 곳곳에서 잘 살려서 쓰는 만큼, ‘오래새·오랜새’처럼 이름을 새롭게 붙여 보아도 어울립니다.


 한아비


  한자말 ‘시조(始祖)’는 어떻게 풀어낼 만할까요? 소릿값인 한글로 적는 ‘시조’로는 알아볼 수 없기도 하고,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오랜 어버이라는 뜻으로 ‘한아비’라 할 만합니다. 이윽고 ‘뿌리·바탕·밑·밑동’이나 ‘밑뿌리·밑싹·밑자락·밑판·밑틀’처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바라본다면 ‘앞사람·앞님·앞분’이나 ‘앞지기·앞내기·앞어른’이라 할 만하지요. ‘어제사람·옛사람·옛분·옛어른’이나 ‘예·예전·옛날·옛길’처럼 나타내어도 되고, ‘옛빛·오래빛·오랜빛’으로 그리거나 ‘어른·어르신’처럼 수수하게 바라보아도 되어요.


 처음·처음길·처음빛

 첫길·첫빛·첫밗·첫걸음·첫사람

 첫꽃·첫별·첫물·첫싹·첫씨


  처음을 이루는 어버이를 가리키려는 마음을 새롭게 바라본다면, ‘처음’이라는 우리말로 옮길 만합니다. ‘처음길’이며 ‘처음빛’처럼 조금씩 살을 붙일 만합니다. 조금 짧게 ‘첫길’에 ‘첫빛’으로 담을 만하고, ‘첫밗’으로 나타내어도 어울려요.


  이렇게 짚노라면, ‘시조’뿐 아니라 ‘조상·선대·선현·선조’ 같은 비슷하면서 다른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옮길 만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시작(始作/시작점)·시발(始發/시발점)·시초·시점(始點)·원점(原點)·기점’ 같은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풀어낼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효시·원류(源流)·원조(元祖)·원형(原形)·원형(原型)’ 같은 한자말로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을 알맞게 가려서 쉽게 쓰면서 이야기꽃을 펴는 길을 열 만합니다.


 비롯하다·태어나다·나다·나오다

 씨알·씨앗·씨

 움·움트다·싹·싹트다


  첫발을 내딛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거듭납니다. 첫씨를 심기에 오늘부터 새롭게 짓는 말살림·글살림을 이룹니다. 첫물을 내놓습니다. 첫별이 뜹니다. 첫꽃이 핍니다.


  먼 옛날에 첫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오늘 이곳에는 우리말·우리글을 비로소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배우고 익히고 나누고 누리고 즐기면서 가꾸는 첫사람이 있습니다.


  몽글몽글 움틉니다. 새록새록 싹틉니다. 처음에는 늘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게 마련입니다. 아주 작은 곳에서 비롯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듯 말이 태어나고, 마음이 나오고, 생각이 납니다.


  그냥그냥 중국글 ‘시조’를 ‘時調’나 ‘始祖’라는 한자에 가두면, 우리글·한글은 그저 소릿값(발음기호)으로 그치고 맙니다. 중국바라기(중국 사대주의)라는 굴레를 이제부터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본바라기도 미국바라기도 아닌, ‘우리바라기(우리 스스로 우리 삶·살림·사랑 바라보기)’를 하면 됩니다.


  저마다 첫별입니다. 누구나 첫꽃입니다. 도란도란 첫씨예요. 어깨동무를 하는 첫발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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