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정토 - 나의 미나마타병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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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1.3.

숲책 읽기 184


《고해정토苦海淨土, 나의 미나마타병》

 이시무레 미치코

 김경연 옮김

 달팽이출판

 2022.1.18.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이시무레 미치코/김경연 옮김, 달팽이출판, 2022)은 책이름 그대로 미나마타 죽음앓이를 들려줍니다. ‘고해(苦海)’하고 ‘정토(淨土)’가 나란히 도사리는 마을로 내몬 죽음앓이(환경병)일 텐데, 고기잡이하고 논밭짓기로 살아오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사람·바다·땅·집·삶·꿈을 모조리 빼앗겼습니다. 이때에 나라(정부)하고 고을(미나마타 벼슬아치)은 뒷짐일 뿐이었고, 여러 글바치가 이 민낯을 다루었으나 숱한 글바치는 먼나라 일로 여겼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죽음앓이는 나몰라라이지요. 그런데 나라 탓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길그림을 보면 미나마타는 매우 포근하고 아름다우며 고즈넉한 바닷마을입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또 미나마타시라는 벼슬아치는, 포근하고 아름다우며 고즈넉한 바닷마을에 끔찍한 죽음터를 때려박았으며, 오늘날에도 이 죽음터는 고스란합니다.


  빛(전기)은 시골이나 서울이나 다 씁니다만, 빛을 많이 쓰는 곳은 서울인데, 정작 서울에는 빛터(발전소)를 크게 세우지 않습니다. 모든 죽음터나 빛너는 포근하고 아름다우며 고즈넉한 두멧시골에 세우는 일본이요 우리나라입니다. 이러다 보니, 글바치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스스로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가’를 모릅니다.


  이 땅은 티끌(고해)일까요? 이 땅을 떠나야 하늘(정토)일까요? 오늘(고해)은 죽음앓이에 잿빛앓이에 소용돌이를 치는 하루인가요? 삶을 내려놓은 다음(정토)에 이르러야 비로소 꿈이며 사랑을 속삭일 하루인가요?


  무언가 지으려 할 적에 왜 죽음물(폐수)을 내놓아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예부터 살림집에서 내놓는 구정물은 ‘다른 목숨을 죽이는 물’이 아닌, ‘흙으로 돌아가 되살아날 물’이었습니다. 오늘날 구정물은 스스로뿐 아니라 둘레를 모조리 죽음길로 내모는 판입니다. 부릉부릉 매캐하게 달리는 쇳덩이는 더 달릴수록 들숲바다를 더럽힙니다. 부릉부릉 쇳덩이가 달리도록 놓는 새까만 길도 들숲바다를 어지럽힙니다. 죽음앓이에 죽음길에 죽음판에 죽음수렁은 미나마타에만 있지 않습니다. 온누리 어디에나 있습니다. 한겨울에 비닐집을 세워 기름을 때서 거두는 밭딸기는 참말로 딸기가 맞을까요? 딸기꽃도 딸기잎도 잊은 채 딸기알만 한겨울에도 늦가을에도 누리는 오늘날이란, 바로 ‘누구나 사납이’라는 뜻입니다.


  작은 아줌마 이시무레 미치코 님은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을 남겨 놓았습니다. 2007년에는 《슬픈 미나마타》란 이름으로 나온 적 있습니다. 미나마타는 미나마타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서울도 시골도 나란히 미나마타입니다. 총칼(전쟁무기)을 만드는 곳에서도 끔찍한 죽음물이 쏟아지고, 총칼은 언제나 죽음물을 잔뜩 내놓는 죽음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잊기에 나랏놈도 고을놈도 죽음짓을 일삼으면서 사람들을 허수아비로 부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미나마타병을 잊어버려야 한다면서, 결국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과거 속으로 묻어버려야 한다는 풍조,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매몰되어 가고 있는 그 암흑 속에 소년만이 우두커니 혼자 남겨져 있었다. (32쪽)


숭어뿐만 아니라 새우, 전어, 도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수확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애가 탄 어부들은 보나마나 어렵사리 변통했을 돈으로 막 유행하기 시작한 나일론 어망으로 바꿔 보기도 했지만, 고양이가 사라진 해변에 들끓는 쥐들에게 빚내서 힘들게 마련한 나일론 어망을 맛좋게 갉아먹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77쪽)


무장한 경찰 기동대의 도착은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회색빛 나는 감색으로 통일된 무장집단. 어깻죽지가 찢어진 누추한 셔츠나 길이가 짧은 무명옷을 입고 지금까지 투쟁으로 가슴께가 풀리고 찢긴 어민들 틈으로 도착한 트럭에서 뛰어내린 이 무장집단이 우르르 몰려갈 때, 그것은 하나의 검은 염색체처럼 보였다. 어민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철갑옷을 입고 곤봉을 휘두르며 나아가는 기동대의 그 색깔은 너무 오싹해서, 확실히 어민들은 기가 죽고 말았다. (113쪽)


“여보, 당신은 밥을 해, 나는 회를 뜰 테니. 그렇게 마누라는 쌀을 씻지, 바닷물로. 깨끗한 먼 바다 바닷물로 지은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새댁, 먹어 본 적 있나?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밥이 희끄무레하게 물이 들고 바닷물 내음이 은근히 입안에 감돈단 말이지.” (188쪽)


“우리는 보리 먹으면서 살아온 사람의 자손이오. 부모님 여의기 전까지 가난히 힘들었지. 부모님 돌아가시고 우리만 겪는 가난은 눈곱만큼도 안 힘들어. 회사 있고 사람 있다고,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본데! 회사 있어 태어난 인간이라면, 회사에서 태어난 그 인간들도 같이 데리고 가줘요. 회사 폐수 때문에 죽은 사람은 봤어도 보리며 고구마 먹고 죽었단 얘기는 내 생전 못 들어봤네.” (299쪽)


#苦海淨土 #わが水また病 #石牟禮道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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