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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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7.

인문책시렁 271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10.30.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를 읽고서 몇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글쓰는 순이(여성)’가 돌이(남성) 마음을 섣불리 옮기려 하는구나 싶더군요. 예전부터 ‘글쓰는 돌이’도 순이가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함부로 쓰는 버릇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동안 숱한 글꽃(문학)이 ‘순이를 모르는 돌이 눈높이’로 휘갈겼다면, 거꾸로 ‘돌이를 모르는 순이 눈길’로 똑같이 휘갈긴다면, 그저 갈라치기나 싸움만 이룹니다.


  둘째, 영어를 한글로 옮긴 글인지, 영어로 옮기기 좋게 쓴 한글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글결은 우리말씨가 아닌 옮김말씨(번역체)입니다.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다 ‘우리글꽃(한국문학)’이라고 아우를 수 있을는지 아리송합니다. 2000년 무렵까지 웬만한 우리글꽃은 ‘무늬만 한글’이 아닌 ‘속살로 우리말’이라는 얼개를 다스리면서 글빛을 밝혔다면, 2000년을 넘어선 뒤부터는 ‘무늬도 한글 같지 않’은데다가 ‘속살마저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범벅인 글멋을 부리는 길’로 확 기울었습니다.


  셋째, 풀밥이건 고기밥이건 맛없게 지으면 맛없고, 맛있게 지으면 맛있습니다. 풀밥차림이 맛없어야 할 까닭이 없고, 맛없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를 가볍게 비아냥대거나 나무라면서, 또 ‘채식주의’인 사람들까지 슬며시 비웃거나 타이르면서 ‘순이돌이하고 얽힌 서울살이 쇠사슬’을 옮기는 듯한 줄거리이기는 한데, 언제까지 ‘막장 연속극’ 같은 판을 깔아야 할까 아리송합니다. 2007년 아닌 2017년에도 ‘집안일 안 하는 돌이’가 많습니다만, 2007년뿐 아니라 1997년에도 ‘집안일을 하고 바깥일을 끊은 돌이’가 꽤 있었습니다. 글꽃(문학)은 우리 어떤 살림자리를 옮겨서 앞으로 어떤 살림꽃으로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을 노릇일까요? 글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 스스로 차츰 바꾸어 나가는 터전입니다. 다만, 사람들 스스로 바꾸어 나가더라도 끝까지 안 바꾸려고 버티는 무리가 있어요. 글꽃은 ‘끝까지 안 바꾸려고 버티는 무리’를 쳐다보면서 그런 줄거리를 담는 삶일까요? 아니면, 글꽃은 먼저 스스럼없이 나서면서 바꾸어 나가는 삶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일까요?


  끝까지 안 바꾸는 사람을 나무라기란 ‘매우 쉽’습니다. 이슬받이처럼 첫길을 열기란 ‘매우 어렵’겠지요. 우리글꽃은 매우 쉬운 길만 풀어놓으면 그냥그냥 읽히고 팔리는 판인가요? 우리글꽃은 첫길을 이슬빛으로 나아갈 만한 새글일 수는 없을까요?


  온누리를 아름답게 바꾸려면, 남이 아닌 나부터 아름답게 말·넋·삶을 바꿀 노릇입니다. 나라지기를 거꾸러뜨리거나 둘레(사회)만 바꾸더라도 나부터 안 바뀌었으면 늘 도루묵입니다. 나부터 바꾸어 나가기에 나라나 둘레가 어수선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한 줄기 들풀로 돋아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면서 천천히 바꾸어 냅니다.


ㅅㄴㄹ


그런데 이제 아내가 차려놓은 식탁은 무슨 꼴인가. 비스듬히 의자에 앉은 아내는 한눈에도 맛없어 보이는 미역국을 입에 떠넣고 있었다. 밥과 된장을 상추에 싸서 볼이 불룩하게 넣고 씹었다. (22쪽)


“뭐가 문제야?” “피곤해.” “그러니 고기를 먹으라고. 고기를 안 먹으니 힘이 없지.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사실은.” “뭐?” “…… 냄새가 나서 그래.” “냄새?”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24쪽)


다음 음식은 깐풍기였고, 그다음 음식은 참치회였다. 모두가 먹는 동안 아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작은 도토리알 같은 유두를 블라우스 속에서 뚜렷이 내민 채, 거기 모인 사람들의 입술과 그 움직임을 샅샅이, 빨아들이듯 지켜보았다. (33쪽)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처남이 그 서슬에 팔의 힘을 빼자, 으르렁거리며 아내가 탕수육을 뱉어냈다. 짐승 같은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 비켜!” (5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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