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북적북적 (2021.12.24.)

― 순천 〈책방 심다〉



  잘 읽어야 할 책일 수 있고, 잘 써야 할 글일 수 있습니다. 잘 지내야 할 삶일 수 있고, 잘 보여야 할 얼굴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잘’은 ‘100,000,000(억)’이란 셈을 가리킵니다. 엄청 많다고 할 만한 결인데, ‘잘’ 해내거나 이루면 훌륭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못 하는 일을 잘 하도록(단점 교정)” 이끄는 길로 왔다가 “잘 하는 일을 더 잘 하도록(장점 강화)”으로 옮아가는 듯합니다. 이 두 길은 나쁘지 않되 썩 즐겁거나 아름답지는 않아요.


  즐거운 길은 ‘잘 하는 길’이 아닌, 그저 ‘즐거운 길’입니다. 남이 따지거나 살피기에 ‘잘’로 가르고, 스스로 나를 바라보기에 ‘즐거움’으로 느껴요. 남이 봐줄 적에는 ‘예쁘다·귀엽다’이고, 스스로 나를 가꾸니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남을 못 바꿀 뿐 아니라, 남을 바꾸려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는 늘 아름책을 말합니다. 아름다우니 ‘아름책’이라 할 뿐, 아름책은 ‘추천도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느끼고 찾고 배우고 거듭나도록 곁에 두면 아름책입니다.


  흔히 “저쪽(상대)이 안 고쳐진다”고 합니다만, “나는 나를 고칠 수 있을 뿐, 남을 고칠 수 없다”고 해야 알맞지 싶어요. “나 아닌 남을 바꾸거나 고치려 한들, 서로 힘들 뿐이라,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 우리가 스스로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저쪽(상대)은 저절로 스스로 바꾸거나 고치게 마련”이라고 느껴요. 우리 스스로 “내가 나를 아름답게 바꾸거나 고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저쪽(상대)은 “이봐, 너부터 스스로 아름답게 나아가지 않는데, 왜 자꾸 나한테 토를 달아?” 하고 따지겠지요. 스스로 즐거우면 스스로 홀가분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길에 순천에 나왔고, 〈책방 심다〉를 들러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전라남도 작은고장 순천은 여러 큰고장 사이를 잇는 길목입니다. 길목은 스치기 쉬운 자리일 수 있고, 문득 깃들어 바람빛을 머금는 터전이 됩니다. 책 한 자락은 스쳐 지나가기 쉬울 수 있고, 얼핏 집어 펼치면서 새바람을 느끼는 길동무가 됩니다.


  책숲(도서관)이며 책집이 북적북적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로 나아가면 즐겁습니다. 입을 꾹 닫고서 조용해야 하다면 책읽기가 지겹습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대목을 읽었기에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읊으면 즐거워요.


  그림책도 글책도 마음을 담아 소리내어 읽을 적에 훨씬 즐겁습니다. 겉눈으로만 훑으면 갇혀요. 속눈으로 헤아리면서 온몸으로 춤추듯 노랫가락으로 얹어 입으로 터뜨리는 이야기 한 줄 두 줄은 새록새록 반짝이면서 씨앗 한 톨이 됩니다.


ㅅㄴㄹ


《일상의 씨앗들》(강나무, 크레아티스트매니지먼트, 2020.12.13.)

《오늘도 사람책을 읽는다》(나옥현, 심다, 2021.11.11.)

《나와 승자 1화 두려움》(whitegrub(김아영), 행복한 재수가 있는, 2018.12.7.첫/2021.8.18.3벌)

《책방 사장과 함께하는 얼렁뚱땅 우쿨렐레》(바다, 심다, 2021.11.1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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