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2022.11.6.
인문책시렁 245
《womankind vol 14》
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2.5.
《womankind vol 14》(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 이 책을 뭐라 읽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로나 엮은이 눈길로 보거나 ‘페미니즘’ 책인 듯싶은데, 읽다가 턱턱 막혔으나 어쨌든 끝까지 읽기는 했습니다.
호주 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온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몇 꼭지를 우리나라 나름대로 새로 넣는구나 싶은데, 이 책에서는 한글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아니, 겉보기로는 한글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무늬만 한글”이라 하더라도 “우리말은 아니”기 일쑤이거든요.
저는 ‘언택트’도 ‘코로나블루’도 모르겠고, ‘록다운’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이런 말을 쓸 일도 없고, 아이들하고 이런 말을 쓸 까닭조차 없습니다. “웅크림의 시간”이 뭔지 모르겠고,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글밭을 모르는 분이 많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에 접어들 무렵까지 ‘한자말을 한자로 안 쓰면 글이 아니라’고 여긴 꼰대가 수두룩했습니다. 〈조선일보〉 하나만큼은 이름에 한자를 그냥 쓰지만, 글을 보면 꽤 쉽게 쓰려고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겨레〉는 무늬만 한글 이름이면서 글이 꽤나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아예 영어를 쓰지요.
2020년 눈길이 아닌 2100년이나 2050년 눈길로 보면 《womankind vol ○○》는 ‘새로운 영어 꼰대’일까요, 아니면 먹물바치 글자랑일까요? 2000∼1945년은 “무늬조차 한글이 아닌 중국·일본 한자말을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1945∼1910년은 “일본글하고 한자를 섞으며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1910∼1392년은 “중국글하고 한문만 쓰며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이 틈바구니 어디에도 ‘우리말과 한글을 누구나 즐거이 널리 쓰던 때’는 없습니다.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을 여미었고, 독립운동을 하던 주시경 님이 ‘한글’이란 이름을 지었으나, 두 이름을 옳게 갈라서 쓰는 사람이 대단히 적습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는 ‘말·우리말’이고, 손으로 옮겨적어 눈으로 읽는 ‘글·한글’인데, 이 둘을 똑똑히 헤아리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페미니즘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니즘(주의)’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목소리를 내면서 이 별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꾸는 길을 밝히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바람비는 왼날개한테만 찾아들지 않고, 또 오른날개한테만 스며들지 않아요. 풀꽃나무는 왼오른을 안 가릅니다. 열매는 왼오른 누구한테나 달콤합니다.
우리가 지을 길이 ‘참사랑’이라면, 외곬로 치닫는 목소리는 이제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womankind vol 14》을 보면 김소연 씨는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기도 하잖아요. 여기도 유리천장이 있는 거예요.” 하고 말합니다만, 터무니없습니다. 저도 돌이(남자)입니다만,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는 놈”은 알랑거리는 분들입니다. 순이(여자)도 ‘알랑거리’면 얼마든지 ‘문단 어른’으로 섬김질을 받으면서 웃질을 일삼습니다. 알랑거리지 않고 조용히 글밭을 일구는 사람은 섬김질을 못 받고 웃질을 안 하며 ‘고위 공직’ 따위는 안 쳐다봅니다.
글을 “문단 안팎에서 충분히 인정받”으려고 쓰나요? ‘나이든 여성 시인이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합니다만, 알랑질을 안 하는 ‘나이든 모든 남녀 시인’이 똑같이 가난할 뿐입니다. 순이돌이(남녀)를 갈라치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랑질을 안 하고 시골에서 글빛을 가꾸는 사람을 누가 알아주는지요? 글판조차 온통 ‘서울바라기(in Seoul)’입니다. ‘서울바라기’라는 고약한 틀을 허물어야 ‘밝게(형형하게)’ 글을 쓰는 참한 순이돌이 누구나 글빛을 밝힙니다. “글 좀 썼다고 문단 원로로 추앙받아야 하는 썩은 틀”이 아닌, 스스로 삶을 숲빛으로 지으면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작은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지낼 길을 그려야 ‘페미니즘다운 페미니즘’이지 않을까요? 우리말도 한글도 쓰지 않는 페미니즘은 누구한테 이바지하려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ㅅㄴㄹ
언택트가 새로운 일상이 되면서 자신의 몸과 감정을 잘 추스르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블루는 작년 한 해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였죠 … 혼자 있는 시간은 다른 형태의 연결을 향해 열린 웅크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Editor's letter/4, 5쪽)
언니 시인들과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할머니 나이가 되어 아직도 시를 형형하게 잘 쓰시는데도 문단 안팎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어요. 심각한 생활고가 기다리기도 하고요.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기도 하잖아요. 여기도 유리천장이 있는 거예요. (김소연 인터뷰/44쪽)
전 세계적인 록다운이 시행되고 6개월이 지나자 공공생활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여럿이 모여 정치 토론을 하거나 집회를 열 공간이 사라졌다. (7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