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날개돋이하는 애벌레 (2022.7.19.)
― 연천 〈굼벵책방〉
책집을 잘 모르는 분이 많으나, 적잖은 사람들은 책집마실을 할 겨를이 드무니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바쁘고, 어른은 어른대로 바쁘거든요. 아이들은 배움터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스스로 못 나서기 일쑤요, 배움터 길잡이 가운데 푸름이를 이끌고 책숲마실을 누리는 이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이제는 새로 여는 마을책집 지기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글을 싣는 새뜸(언론)이 조금 생겼지만 턱없이 적습니다. 예전에도 새뜸은 마을책집 지기 목소리를 아예 안 다루다시피 했어요. 잘 봐요. 새뜸에 마을사람 목소리가 나오나요? 새뜸에 시골사람 목소리가 나오나요? 새뜸에 고기잡이나 흙지기나 어린이 목소리가 나오나요? 누리글집(블로그·카페·인스타)이 날개돋지 않았다면 새뜸에서는 마을책집 목소리에 귀를 안 열었으리라 느낍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목소리는 우리가 내면 됩니다. 책집마실을 안 하는 글꾼(기자·작가)이 책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책집은, 그림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미술관입니다. 책집은, 사진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사진전시관입니다. 책집은, 그냥 책을 들여놓기만 해도 도서관입니다. 책집은, 책손이 문득 드나들기만 해도 쉼터이자 만남터이자 수다터입니다. 책집은, 숲에서 자란 나무로 빚은 책을 함께 나누기에 푸른터입니다.
어린이책을 놓기에 어린이가 문득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느긋이 쉬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노래책(시집)을 놓기에 시끌벅적한 바깥(도시문명)을 잊고서 고요히 노래에 마음을 적시다가 삶자리로 돌아갑니다.
연천마실을 했고, 〈오늘과 내일〉에 들렀고, 〈굼벵책방〉으로 찾아옵니다. 곁에는 말이 달리는 숲뜰이 있습니다. 굼벵이가 오래오래 나무뿌리 곁 흙을 품고서 꿈을 꾸고 나면,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애벌레 몸을 벗고는 날개를 달고서 노래하고 하늘을 가릅니다. 화살꽃(화살표)을 따라 〈굼벵책방〉에 들어서면 천천히 그림꽃이 피는 결을 누릴 만합니다. 꿈꾸며 날아가는 길처럼 그림책집을 가꾼 손길은 ‘또다른 책짓기’입니다.
다 다른 곳에서 오늘 이 삶을 짓기에 저마다 새롭게 글그림을 여밀 만합니다. 책읽기란, ‘글쓴이하고 한마음(동의) 되기’가 아닌, ‘글쓴이 곁에서 함께 생각하기’입니다. 생각해 보고서 한마음이 될 수 있고, 생각해 보았기에 새마음으로 이야기를 펼 수 있습니다. 요새 적잖은 그림책은 “당신도 동의하세요!” 하고 윽박지르는 듯합니다. 예전엔 ‘교훈주의·동심천사주의’가 춤추었고, 요새는 ‘교훈 강요·캐릭터’가 춤추는데, 굼벵길을 꿈·숲·노래로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ㅅㄴㄹ
《깜장이》(다나카 기요/김숙 옮김, 북뱅크, 2022.3.15.)
《빨간 마음》(브리타 테켄트럽/이소완 옮김, 위고, 2022.5.20.)
《The Ultimate Book of Horse》(Sandra Laboucarie 글·Helene Convert 그림, Twirl, 2020.)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